[김갑식 기자의 뫔길]스님의 별명 속엔 그 삶의 궤적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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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된 승복을 기워 입는 ‘누더기 스님’으로 알려진 부산 영일암 주지 현응 스님이 최근 동국대에 1억 원을 기부해 화제가 됐습니다.

현응 스님은 2007년에도 사찰 소유지가 수용되면서 받은 보상금 중 1억 원을 동국대 일산불교병원 발전을 위해 기부했고 지난해에도 사찰의 모든 재산 6억 원을 인재불사에 써달라며 같은 대학에 맡겼습니다. 스님의 또 다른 별명은 ‘4무(無) 스님’입니다. 휴대전화와 신용카드, 자동차, 인터넷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것입니다.

스님을 법명이 아닌 별명으로 부르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길 수도 있지만 옛 어른 스님들의 별명에는 삶의 한 자락이 담겨 있어 친근하기도 합니다.

동산 스님은 뛰어난 법문으로 ‘설법제일(說法第一)’, 성철 스님은 주로 머물렀던 가야산과 서릿발 같은 선풍으로 가야산 호랑이였죠. 현재 해인총림 방장인 법전 스님은 한번 참선에 들어가면 꼼작 않는다고 해서 절구통 수좌, 쌍계총림 방장 고산 스님은 젊은 시절 매섭게 시시비비를 따지는 불같은 성격 때문에 ‘땡비(땅벌)’로 불렸습니다.

요즘 스님들의 별명에서도 그들이 추구하는 포교와 수행의 방편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신도 30여만 명으로 국내 최대 사찰인 대한불교천태종 부산 삼광사 주지 무원 스님의 별명은 항상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다녔다는 복덕원만(福德圓滿)의 상징, 포대화상(包袋和尙)입니다. 불교판 산타클로스죠. 넉넉한 외모와 원만한 성품, 다문화가정을 비롯한 소외계층을 돕는 데 열성적인 무원 스님의 별명으로는 제격입니다.

한국불교태고종 충북 옥천 대성사 주지 혜철 스님은 ‘중매쟁이 스님’으로 불립니다. 결혼이야말로 종교를 뛰어넘는 국가 대계(大計)라는 지론으로 2005년부터 청춘사업에 뛰어들어 1000여 쌍의 인연을 맺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성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cafe.daum.net/dasungsa)에는 9000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2년간 8000km를 달리며 모금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도와온 진오 스님은 ‘철인 스님’입니다.

스님들은 출가할 때 은사 스님으로부터 대개 수행자로서 살아야 할 방향이 담긴 법명을 받습니다. 법명이 삶의 목표라면, 별명은 그 삶의 궤적인 셈이죠.

그런데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별명은 뭘까요? 다음에 또 얘기하죠.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현응 스님#1억 원 기부#누더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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