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79>명절과 야유회의 차이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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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안 아픈 곳이 없다”는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남자는 고향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아내의 눈치를 살피다가 라디오를 켰다.

지난 주말, 직원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회사 야유회가 있었다. 남자는 그날 행사에서 고기를 구웠다. 매운 연기 맡아가며 구운 분량이 소 한 마리는 너끈히 되는 것 같다. 천막에 모여 앉은 높은 분과 여직원들에게 접시를 날랐다.

모두가 장기자랑이며 게임에 열중해 있을 때에도 상을 치우며 커피에 과일을 내가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천막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상했다.

애써 즐거운 표정을 지었는데도 상사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인상 좀 펴라고. 1년에 한두 번 있는 행사를 가지고 왜 유난을 떨고 그래.”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상사도 마찬가지다.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다. 뻔한 회식이며 야유회를 여간해선 반기지 않는 것이다. 친목과 단결을 위해서라면 직원들이 원하는 다른 방식이 얼마든지 있을 텐데. 야유회는 다른 곳에 들렀다 온다는 회장을 기다리느라 해가 저물 무렵에야 막을 내렸다.

아내의 추석도 ‘내키지 않는 야유회’와 공통점이 있다.

아내 또한 이번 추석을 맞이해 음식 장만과 수발로 허리가 휠 것이다. 울렁대는 속을 다스리며 온갖 종류의 전을 부치고 끼니마다 음식을 나르고 치울 터이다. 그녀로선 맞벌이인데 왜 자신만 희생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1년에 두 번뿐인데 유난을 떤다”는 말을 듣기도 싫을 것이다.

명절이 회사 야유회와 다른 점은,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미풍양속이라는 것. 조상을 모신다는 명분 또한 그렇다.

한데 정말로 조상귀신이 와서 음식을 드신다는 생각은 사라진 듯하다. 그보다는 일가친척이 오랜만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고 즐겁게 어울리는 계기라는 인식이 많다.

고속도로는 초입부터 꽉 막혀 있었다. 지옥 같은 교통체증을 뚫고 내려가는 고향에서 이번에는 얼굴 붉힐 일이 없기를 남자는 소망해본다.

회식이나 야유회가 피곤한 까닭은 분위기 맞추느라 억지로 먹어야 하는 술 때문만은 아니다. 해묵은 감정이 ‘친목 도모’를 기화로 마구 쏟아지는 바람에 부담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것이다.

가족의 명절 또한 그렇다. 각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가까이 지내야 할 상대의 마음에 깊은 앙금을 남겨놓을 수 있다.

남자는 시댁에 들렀다 오는 누나를 늦게까지 기다리는 일만은 없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누나가 빨리 오고 싶은 마음은, 곧 아내가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니까.

한상복 작가
#아내#명절#야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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