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94>그리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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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아이헨도르프(1788∼1857)

별들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다.
나는 홀로 창가에 기대어
고요한 마을
멀리서 들리는 역마차 피리소리를 들었다.
어쩐지 가슴이 타오르듯 뜨거운
이렇게 아름다운 여름밤
저렇게 함께 여행할 사람이라도 있다면 좋겠네.
그런 생각을 슬쩍 하기도 했다.

젊은이 두 사람이
산비탈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걸어가면서 노래하는 소리가
고요한 산자락을 따라 멀어져간다.
살랑살랑 속삭이는 숲을 맴돌고
현기증 나는 바윗길을 맴돌아
낭떠러지를 뚝 떨어져서
숲의 어두움 속에 사라지는 샘물을 맴돌고 간다.

그들은 대리석 조각에 대해 노래하고 있었다.
어두컴컴하게 우거진 갈퀴덩굴 속의
바위 있고 잔디밭 있는 정원과
달그림자에 떠오르는 궁전을 노래했다.
아름다운 여름밤
아가씨들이 그 창가에 기대어
아련한 샘물의 속삭임 소리에 귀 기울이며
칠현금 소리 울리기를 기다린다고.


화자는 한적한 시골마을에 산다. 어느 맑은 여름밤, 창가에 기대어 하늘 가득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멀리서 ‘역마차 피리소리’가 들려온다. 지금이라면 기차소리일 테다. 그렇잖아도 아름다운 여름밤, ‘어쩐지 가슴이 타오르듯 뜨거운’ 참인데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이 시간 저 역마차에는 여름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즐겁게 웅성거리겠지. 아, 나도 저 역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구나. 혼자서는 말고, 누군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친구와 함께 도보여행을 하던 젊은 날이 그립게 떠오른다. 산비탈도 바윗길도 숲길도 발이 부르트도록 걸었지. 날이 저물도록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 노래 가사는 대리석 조각에 대해서였지. 또 잔디밭이 있는 정원의 궁전, 달 밝은 여름밤이면 궁전에 사는 아가씨들이 창가에 기대어 아련한 샘물의 속삭임에 귀 기울인다고도 노래했지. 아, 아가씨들이여, 알지 못할 먼 곳들이여, 내 젊은 날이여!

독일 낭만파 시인 아이헨도르프는 만년을 전원에서 살며 시를 썼단다. 이 시는 그 시절에 쓴 듯한데 대체 몇 살부터 ‘만년’이라는 걸까. 아직 그리움이 펄펄 작동하누나. 시골생활은 때로 외로울 테지만, 그래서도 마음에 그리움이 들어찰 여유가 생길 테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리움에 가슴 조인 지 오래다. 그리움이 그립다!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청춘남녀를 들썽거리게 하는 여름밤이다. 아름다운 여름 보내시라!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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