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규제법’은 규제인가, 아닌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0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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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9일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 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규제법·3월 11일 공포)의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다. 3월에 통과한 모법에 이어 각론이 나온 것이다. 시행령은 9월부터 시행된다.

이 법과 시행령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교육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일선 초중고교는 각 학년이 배워야 할 내용을 뛰어넘는 교육은 하지 말고, 나중에 배워야 할 것을 미리 가르치지 말며, 교육과정 밖의 내용을 어떤 시험에도 출제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기면 학교 운영비와 입학정원을 줄이겠다고 한다(1차 적발 시 학교운영비 삭감 및 정원 감축 5~10%, 2차 적발 시 학교운영비 삭감 및 정원 감축 10~20%).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입 논술이나 면접 등을 통해 학교에서 배운 내용 이외의 것을 출제하거나 물어보면 입학정원을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이 법에 대한 논란은 여러 언론이 자세히 언급했기 때문에 피하고자 한다. 다만 이 법은 다른 시각에서도 분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최근 박근혜 정부가 철폐를 강조하고 있는 각종 규제와의 정합성이다. 이 법에는 '규제'라는 말이 '당당하게' 들어가 있다. 사교육 철폐에 반대할 사람이 없고, 대통령의 교육관련 최대 공약 중 하나이며, 강수를 두지 않으면 사교육을 줄이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그게 시비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다만, 목표가 옳다고 해서 수단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비판받는 규제의 대부분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 때문이다. 없애야 할 규제는 있으나마나 하거나,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렵거나, 오히려 해를 키우는 법령이나 제도일 것이다. 선행학습 규제법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넘어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법이 효력을 발생하려면 몇 가지 단계를 거치며 그 단계마다 철저하게 준수돼야 한다. 우선 학교가 이 법을 철저히 따라야 하고, 학부모와 학생도 흔쾌히 수용해야 하며, 감독 기관은 실행여부를 빠짐없이 체크해야 하고, 학교 밖의 사교육기관은 학생 유치 욕심을 버려야 하며, 대학도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이 과정 중에서 한 곳이라도 탈이 나면 이 법은 무너질 것이다. 과연 그럴 수 있겠는가.

둘째는 박근혜 정부가 주창하고 있는 창의성 함양이나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느냐다. 사교육을 없애기 위해, 벽돌 찍듯이 찍어낸 교육과정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만큼 가르치고, 정해진 범위 내에서 평가를 하라는 것이 이 법의 취지다. 그런 환경에서 과연 창의성이 길러지겠는가.

학생의 창의성뿐만 아니라 학교장의 학교 경영, 교사의 학급 경영 및 교과 운영의 창의성이나 재량권도 대폭 축소될 것이다. 하라는 대로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분위기 속에서 더 나은 교수 방법이나 더 나은 문제 출제로 학생의 학업 향상을 꾀하겠다는 의욕이 솟아날 리 없다. 학교장이나 교사가 원래부터 사교육을 조장할 의도가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셋째는 교육의 대상인 어떤 개념이나 대상을 쾌도난마처럼 분명하게 쪼개 이건 가르쳐도 되고 이건 가르쳐선 안 된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선행학습과 심화학습은 어떻게 다르며, 원리문제와 응용문제는 또 어떻게 다른가.

학생과 학부모가 사교육으로 달려가는 가장 큰 이유는 교과 내용이 아니라 '두려움'과 '손해의식'이라고 본다. 즉 무엇을 배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이 무엇이든 나만 배우지 않으면 대학입시에서 떨어지거나 낙오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심리적 불안이 사교육을 공룡으로 키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행학습 규제법을 준수해 모든 학교와 대학이 정해진 범위를, 정해진 순서에 따라 가르치고 그 범위 내에서 출제를 한다 해도, 만약 일부 학생이 학교 밖에서 사교육을 받는다면 나머지 학생이나 학부모도 마음 편히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없는 게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다. 이 법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따라서 이 법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공자님 말씀처럼 들리겠지만) 기업과 사회가 학벌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한다. 즉 시간을 들이는 '한방적 접근'을 통해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꾸지 않고, 선행학습 하나만을 도려내는 '양방적 접근'으로는 사교육을 잡기 어렵다. 고졸을 우대한다고 했다가 정권이 바뀌면 채용을 확 줄여버리는 사회, 겉으로는 대학졸업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고졸의 80% 이상이 대학을 졸업하는 사회, 그런 대학 중에서도 몇몇 소수 대학 출신을 더욱 우대하는 사회를 그대로 두고는 사교육은 절대로 줄어들지 않는다. 물론 이를 하루아침에 바꿀 방법은 누구도 없다. 다만, 그런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마치 선행학습규제법을 사교육퇴치에 특효약인 것처럼 선전해선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안양옥)가 이 법의 시행령에 대해 초중고 교원 202명(초등 102, 중학 30, 고교 65, 전문직 5명)에게 물어봤다. 고민이 그대로 들어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취지는 백번 이해하나 잘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51.0%는 긍정적으로, 48.0%는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호각이다. 이 정도면 긍정적인 반응이다. 교사들은 이 법 시행령이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반 배치 고사를 금지하고, 국제중 자사고 특목고 등의 입학시험을 이전 학교 교육과정 수준 및 범위로 제한하며, 학교 밖 경시대회와 인증시험을 입학전형에 반영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 등은 어느 정도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줄이는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다른 대목도 중요하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사회인식과 학벌 사회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른바 명문대학 선호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학교만 규제한다고 해서 사교육 수요와 선행학습이 근본적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다. 오히려 경제력이 가능한 학생, 학부모는 학교 밖 사교육 의존도를 높일 수 있고, 그렇지 않은 학생, 학부모는 교육과정이 정한 범위 내의 수업과 교육만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이 법 시행 1년 후가 매우 궁금하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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