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의 詩로 여는 주말]‘상한 영혼을 위하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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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1948∼1991)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디든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이수경 작가의 ‘번역된 도자기’.
이수경 작가의 ‘번역된 도자기’.
서울 시내 한 종합병원의 신경과 병동. 얼마 전 엄마가 입원한 5인실에 새 환자가 들어왔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실려 온 69세 할머니는 몸 오른쪽이 마비돼 혼자 기동할 수 없었다. 24시간 보살핌을 받아야 할 처지인데 낮이나 밤이나 보호자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언어장애까지 온 탓에 손짓 발짓에 필담을 동원한 어설픈 대화 끝에, 평생 홀로 살아오신 고아 출신임을 알게 되었다. 가족이 없으니 호스를 통해 제공받는 끼니도, 정기적으로 챙겨야 하는 대소변 처리도 모두 낯선 이의 친절에 기대어 해결해야 했다. 하루 종일 아픈 사람 곁에 있다 보면 보호자도 간병인도 몸과 마음이 지치기 마련이다. 한데 간호사와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닿기 힘든 시간이면 같은 병실 사람들이 궂은일 마다않고 선뜻 손발이 되어주었다. 일가붙이에 이어 몸의 자유도 잃은 할머니가 하루하루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말이 떠올랐다. 질병이 아니라도 실패 죽음 등 삶의 아픔을 겪거나, 지금 힘든 고비를 넘고 있는 사람들은 공감 능력이 커지나 보다. 세상에 나 혼자 상처받은 영혼인 듯, 나만 고통받는다는 생각을 버려야만 타인의 설움이 눈에 들어온다. 나와 남의 눈물과 비탄이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일 터다.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는 내 앞에 닥친 역경을 외면하기보다 정면돌파하는 용기가 내면의 성장을 이끈다는 것을 일깨운다. 길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마주 잡을 손’이 오고 있다는 낙관적 전망도 잔잔한 위로를 전한다.

시는 이수경 작가의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와 서로 맥이 통한다. 도자 명장의 가마터에서 가져온 사금파리를 소재로 완성한 작품이다. 티끌만 한 오점도 허용하지 않는 장인 정신에 입각해 깨뜨린 도자기의 파편을 주워와 작가는 조각조각 이어 붙인다. 이음새엔 금박까지 입혀 깨진 흔적을 더 강조한다. 작가는 “금(crack)을 금(gold)으로 덮은 작품”이라며 “이는 실패나 오류로부터의 재탄생이고 부활이며, 시련과 역경을 딛고 더 성숙해지는 아름다운 삶에 대한 은유”라고 설명했다.

세월 갈수록 쌓여가는 인생의 흠집들. 우리도 그 상처 자국이 흉측하다 피하지 말고 하나하나 보듬어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거다. 따지고 보면 캄캄한 밤이 되고서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상한 영혼으로 보내는 나날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이유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동병상련#‘번역된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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