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니컬러스 크리스토프]미국을 흠집 낸 스파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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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미국이 동맹국들의 반감을 살 만한 일은 많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흥미진진한 전화 통화 내용을 트위터에 올릴 수 있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샤워하면서 노래 부르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릴 수도 있다. 국방부는 단지 미국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프랑스 파리 상공에 드론을 띄워 고급 레스토랑에 빅맥 햄버거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 안보에 흠집을 낸 에드워드 스노든과 첼시 매닝(브래들리 매닝)에게 분노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최근 NSA 감청 논란은 단지 감시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벌어지는 행위들이 어떻게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태롭게 만들었는지 깨닫게 한다.

미국의 안보정책은 9·11테러 이후 정상적인 기능을 못하고 있다. 감시 활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이뤄졌다. 미국은 전술상 이익을 강구해 왔지만 동맹국들의 반발을 부르는 등 전략적 손실을 초래했다.

미국은 정보요원 관리에 매년 700억 달러(약 74조2700억 원) 이상을 투자하는 등 지출을 2배로 늘렸다. 기밀취급 허가권자의 수는 워싱턴의 주민(약 63만 명)보다 많았고 그들 중 일부의 이탈을 막을 수 없었다. 모든 사항이 기밀로 취급되면 시스템은 신뢰와 투명성, 책임을 잃게 된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으로 이어진 테러와의 전쟁은 별다른 소득 없이 큰 대가만 치르게 했다. 미군이 지하디스트를 한 명씩 죽일 때마다 새로운 적들이 생겨났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격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안보 정책을 수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라크 파병 부대를 철수하고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수도 줄여 나갔다. 그러나 결국 그의 정책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때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수감자 인권 침해 논란을 불러왔고 NSA 감시 활동은 계속되고 있으며 드론 공격은 강화됐다. 백악관은 간첩법을 적용해 과거 행정부가 기소했던 내부 고발자를 다 합친 수보다 더 많은 이를 기소했다.

최근 유럽 지도자들에 대한 감시 스캔들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이 근시안적이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도청은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감시의 제1법칙’뿐 아니라 독일 법을 위반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외국 지도자 35명 도청 사실을 진짜 몰랐다면 정보 관리에 문제가 있었던 거다. 전 중앙정보국(CIA) 고위 관계자는 “9·11 전에는 정부 관료들이 대통령 또는 최소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감청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9·11 이후 스파이 행위는 별다른 제재 없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자만심은 소프트파워 외교를 약화시켰다. 한 예로 파키스탄에서의 드론 공격은 몇몇 무장세력 지도자를 소멸시켰지만 미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파키스탄 국민을 분노케 했다. 로이터통신은 “알카에다를 향한 미국의 집착은 테러 그룹보다 더 많은 손해를 끼치고 있다”고 전했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 회장은 “오늘날 유럽인들 대다수는 냉전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재량권도 줄었다”고 말했다. “지정학적으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 편이라고 추정할 수만은 없다”고 했다.

만일 발가벗겨질 정도로 공개를 강요받는 상황이 된다면 비밀작전 대신 민간에 의지하는 게 더 편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발가벗는 대신 옷을 바꿔 입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은 단지 감시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감시하기보다는 잠시 멈춰 서 숨을 고르고 균형을 모색할 시간이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도청#첩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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