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비창’교향곡, 3세기前 오페라와 닮았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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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곡가 헨리 퍼셀. 동아일보DB
영국 작곡가 헨리 퍼셀. 동아일보DB
5월에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1악장 선율에 죽음과 관련된 메시지가 있다”고 쓴 적이 있죠. 11월 유난히 이 ‘비창’이 자주 무대에 오릅니다.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유리 시모노프 지휘로 이 곡을 연주하고, 14일에는 김대진 지휘 수원시립교향악단이 같은 무대에 이 곡을 올립니다. 7일에는 박상현 지휘 모스틀리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서울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비창’을 연주합니다.

이처럼 집중적으로 무대에 오르는 이유가 있을까요? 쓸쓸한 늦가을 분위기에 ‘딱’이라는 것과 함께, 11월 6일이 차이콥스키의 서거 120주기란 점을 상기할 만합니다. 때맞춰 ‘비창 교향곡과 차이콥스키의 죽음’을 다시 한 번 논한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듯합니다.

5월 칼럼에서는 1악장의 느린 제2주제를 놓고 차이콥스키가 비슷한 선율들에 달아놓은 가사 또는 표제를 통해 ‘죽음의 암시’를 찾아보았죠. 이번에는 작품의 시작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저음이 반음씩 내려가면서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바순이 라-시-도-시의 우울한 선율을 읊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과 닮은 작품이 있습니다. 영국 작곡가 퍼셀이 300여 년 앞서 쓴 오페라 ‘디도와 에네아스’의 아리아 ‘내가 땅 속에 누웠을 때(When I am laid in earth)’입니다. 마침 11월 15일 KBS교향악단이 백윤학 지휘로 서울 KBS홀 무대에 올리는 ‘클래식, 시를 읽다’ 콘서트에서 현악기만으로 이 곡을 연주합니다.

이 노래도 반음씩 내려가는 저음과 라-시-도-시 계이름으로 시작하는 선율을 갖고 있습니다. 가사를 살펴볼까요. ‘내가 땅 속에 누웠을 때/내 잘못이 그대를 괴롭히지 않기를/나를 기억하여 주오. 그러나 내 운명은 잊어주오.’

<음원 제공 낙소스>
<음원 제공 낙소스>
어떻습니까. 죽음을 염두에 두고 대작을 쓰는 작곡가가, 그보다 3세기 전 ‘죽음’을 노래한 아리아를 변형해 작품의 시작으로 삼았다면.

물론 120년 전 죽은 차이콥스키의 마음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단지 하나의 가정일 뿐입니다. 다음 QR코드 또는 인터넷 링크에서 두 작품을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blog.daum.net/classicgam/33

유윤종 gustav@donga.com
#차이콥스키#죽음#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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