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브람스 선율속엔 엄밀한 논리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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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가 아니셨던 아버지는 종종 작곡가들의 선율 만들기에 대해 농담을 하셨습니다. “도화지에 오선지를 그리고, 콩나물을 확 뿌려. 읽어봐서 듣기 좋으면 작품으로 만들지.” 그러고는 장난기 섞인 웃음을 짓고 한마디를 보태셨습니다. “현대음악에서는 듣기 안 좋아도 그냥 써.”

명선율을 만드는 것은 작곡가의 ‘영감’일까요, 아니면 ‘기법’일까요. 선율을 긴 구조로 펼쳐내는 것이나 화음을 넣는 일은 기법이 분명 중요할 겁니다. 반면 선율만은 기법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영감의 산물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계산해서 만들어낸 멜로디도 있으니까요.

낭만주의 작곡가였던 브람스(사진)는 형식과 논리를 중시했습니다. 그는 음악 작품 속에 ‘감정’뿐 아니라 건축적인 엄밀성과 논리도 들어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교향곡 4번 첫 악장은 b음에서 두 음씩 계속 떨어지는 선율로 시작됩니다. 계이름으로 풀면 미-도-라-파-레-시-솔-미죠. 계속 떨어지기만 하면 너무 낮아지니까, 중간에 두 번 위 옥타브로 건너뜁니다. 브람스가 이렇게 교향곡 4번의 첫 선율을 만들었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얘기했으니 새롭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도 있습니다. 브람스에게 이런 기법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저녁, 머릿속으로 브람스의 교향곡 1번 4악장을 흥얼거리는데 뭔가 머리를 탁 치고 지나갔습니다. “두 음씩 떨어지는 게 열두 음이나 계속되는데! 이게 교향곡 4번보다 먼저 나온 거네!” 아래 악보 및 QR코드와 인터넷 주소로 링크한 두 번째 선율입니다. 브람스가 이런 방법을 오랫동안 머리에 넣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음원 제공 낙소스>
<음원 제공 낙소스>
브람스 교향곡 중에서도 마지막 곡인 4번은 많은 사람들이 ‘만추(晩秋)의 교향곡’이라고 부릅니다. 요즘 화장품 광고에도 쓰여 친근하죠. 아쉽게도 이 가을에 이 곡을 연주하는 콘서트는 눈에 띄지 않네요. 이 곡보다 먼저 두 음씩 떨어지는 선율을 선보인 교향곡 1번은 9일 평촌아트홀에서 디토 오케스트라가 여는 ‘오케스트라, 젊음을 입다’ 콘서트에서 연주됩니다. blog.daum.net/classicgam/34

유윤종 gustav@donga.com
#브람스#기법#교향곡 1번 4악장#교향곡 4번#만추의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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