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필직론’]모병제와 세금폭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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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세금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무섭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한 달에 1만6000원 더 내는 것이 세금 폭탄이냐”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국민은 증세를 폭탄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한국 사람뿐 아니라 이 세상 누구도 세금 자체는 물론 조금이라도 세금이 늘어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미국의 역사학자 찰스 애덤스는 “세금은 인류에 대한 천벌”이라고 했을까.

그러나 한국의 젊은 남자들은 어떤 세금보다 가혹한 병역의무를 짊어져야 한다. 냉전이 끝난 이후 세계의 대세는 의무 징병제가 아니라 자원 모병제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미국, 캐나다 등이 모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대만도 2015년까지 모병제로 완전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모병제 나라들을 지켜보는 한국 젊은이들의 심사는 어떨까. 2년 가까이를 군대에서 보내야만 하는 그들에게 외국의 모병제는 진정 부러울 터. 당장 내가 부담하지 않아도 될 세금이라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일부 정치인이 모병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최근 다시 논란이 되었던 군필자 가산점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모병제를 주장했다. 그러니 젊은이들은 우리나라가 모병제를 못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모병제를 주장하는 사람이나 소망하는 사람이나 모두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은 모병제에 따른 증세이다.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지 않게 된 사람, 가산점을 주는 대신 직업 군인만의 군대가 되기를 바랐던 사람 모두가 지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할지 모른다.

세계 제일의 군사·경제력을 가진 미국은 1973년 전면 모병제를 선택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국민의 극심한 반발에 따른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었지만 경제적 고려가 컸다. 여기에 경제학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던 시카고대의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대표적 인물.

그는 징집제 폐지를 결정한 ‘게이츠 위원회’에 참여한 것을 두고 “내 일생에 그만큼 만족할 만한 공공 정책 활동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게이츠 위원회는 “징집제는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의 권리를 앗아가는 세금”이라고 비판했다. 경제학자들이 주도한 위원회는 모병제 때문에 국방예산이 크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미래의 경비를 내다보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된다.

미국은 모병제 이후 인력시장에서의 경쟁 때문에 사병 월급을 대폭 올렸다. 1968년 평균 연봉은 5780달러. 340만 명의 병력 유지에 드는 돈은 199억 달러였다. 그러나 1974년에 병력은 220만 명으로 1968년보다 35% 줄었으나 예산은 242억 달러로 오히려 22% 늘었다. 연봉이 1만895달러로 90%나 늘었기 때문이었다. 연봉과 각종 혜택은 갈수록 불어났다. 1998년의 경우 경제 호황으로 군대 지원자가 크게 줄었다. 빌 클린턴 정부와 의회는 민간 기업으로 몰리는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월급 등을 크게 올릴 수밖에 없었다.

1월 발표된 국방부 연구를 이끌었던 아널드 퓨내로 예비역 소장은 “전면 모병제 병력에 드는 모든 경비는, 만약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미국의 군사 능력을 초토화할 수 있는 시한폭탄의 하나”라고 말했다. 2012년 워싱턴의 ‘전략과 예산 연구센터’는 예산이 인플레이션 수준으로만 는다면 2039년에 병력 유지비가 국방예산을 독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월급, 수당 이외에 연금, 가족을 포함한 의료 혜택, 주택, 교육, 보육시설, 매점 등의 지원에도 어마어마한 돈이 더 들기 때문.

의료 혜택 비용만 국방예산의 10%에 가까운 500억 달러. 미국은 최근 10여 년간만 해도 해마다 9%가량 국방비를 늘려 왔다. 1974년 3000억 달러 수준에서 2013년엔 두 배가 넘는 6800억 달러로 늘었다. 국내총생산(GDP)의 4.7%. 그중엔 전쟁 경비도 있으나 75%가량이 인력 유지에 쓰인다. 전면 지원제의 대가다. 그래서 징병제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끊이질 않는다.

페루는 2000년 모병제를 채택했으나 3월 징병제로 전환키로 결정했다. 예산 부족으로 사병들에게 제대로 대우를 해 주지 못하기 때문. 대만 모병제도 돈 문제로 난항이다. 1000달러 월급 수준은 민간 부문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대만 정부는 GDP의 2.2%인 국방비를 높일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한다. 증세에 대한 국민의 저항 탓이다.

어떤 안보 상황이라도 무시한 채 단순히 모병제만을 위해 우리나라 병력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고 하자. 10만 원 남짓한 사병 월급을 1974년의 미국처럼 90% 올린 20만 원에 직업 군인이 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10배 이상 월급에 각종 수당, 연금, 의료 혜택 등을 주지 않으면 군대에 오려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병력 수를 웬만큼 줄여도, 국방예산은 현재의 GDP 2.5% 부담을 훨씬 넘길 것이며 해마다 대폭 증세는 불가피하다. 매달 1만∼2만 원 더 내는 것으로는 도저히 국방예산을 감당키 어려울 것이다.

프리드먼은 징집제가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삶을 형성할 수 있는 자유를 심각하게 간섭하는 불공평하고 독단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외국 젊은이들만큼 우리의 젊은이들에게도 그런 자유가 소중하다. 국제화 시대, 100여 개 이상의 나라가 모병제를 하는 마당에 언제까지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국방의무의 신성함만을 강조할 것인가. 그렇지 않고 모병제를 하려면 요즘의 세금에 대한 반응에 빗대어, 세금 폭탄이 아니라 세금 원자탄을 각오해야 한다.

내가 세금을 더 내지 않으면서 젊은이들에게 계속 희생하라 요구할 수 있겠는가. 세금이 무섭다면 군필자 가산점 등 분명한 보상으로 젊은이들을 다독이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세금#증세#병역의무#모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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