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31>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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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들
―이하석(1948∼ )

바다는 우리의 것들을 밖으로 쓸어낸다
우리 있는 곳을 밖이라 할 수 없어서
생각들이 더 더러워진다 끊임없이
되치운다
우리가 버린 것들을 바다 역시 싫다며 고스란히 꺼내놓는다
널브러진 생각들, 욕망의 추억들, 증오와 폭력들의 잔해가 바랜 채 하얗게 뒤집혀지거나
검은 모래 속에 빠진 채 엎어져 있다
나사가 빠지고 못도 빠져나가 헐겁지만
그것들은 우리 편도 아니다
더욱 제 몸들 부스러뜨릴 파도 덮치길 겁내며
몇 번이나 우리의 다리를 되걸어 넘어뜨린다
여름 홍수에 그런 것들 거세게 바다 파고 들지만
바다는 이내 그 모든 것들을 제 바깥으로 쓸어 내놓는다
우리 있는 곳을 밖이라 할 수 없어서
우리 생각들이 더 더러워진다 끊임없이
되치워야 한다


지하방만큼은 아니겠지만 대개 날림으로 지어진 옥탑방도 폭우의 습격에 취약하다. 짧은 처마 밑에서 벽은 직격으로 퍼붓는 비를 흠뻑 머금어 벽지가 축축이 젖어 있다. 방 한가운데 누워 천장의, 질금질금 영역을 넓히는 한 뼘 얼룩을 바라본다. 모래로 지은 듯한 옥탑방에서 폭우 소리를 듣는다. 기후의 영향을 크게 받고 사는 이 사람 저 사람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는 홍수 뒤 물 구경을 갔었지. 한남대교 난간에서 고개를 내밀고, 싯누런 강물이 포효하며 맹렬한 속도로 끝없이 지나가는 광경을 봤지. 상류에서부터 휩쓸려온 온갖 것이 어디로 떠내려가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지.

바다는 모든 것 받아줘서 ‘바다(받아)’일까? 아니다. 바다는 받아주는 척할 뿐 받아주지 않는다. 해변에는 스티로폼 박스나 페트병이나 망가진 그물, 소주병, 동물의 사체 같은 것이 널브러져 있다. 바다가 밀어낸 그것들은 원래 바다의 것이 아니다. 인간 욕망의 잔해다. 우리는 욕망하고 그 잔해, 내면의 더러움을 비롯해서, 모든 더러운 찌꺼기를 바깥으로 치워버린다. 바다로 떠내려 보낸다. 그리고 깨끗해진 줄 알지만,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뿐 더러움이 사라진 게 아니다. 바다는 우리가 쏟아버린 더러운 것들을 저도 싫다고 제 바깥, 우리에게 끝없이 되밀어낸다. ‘인간이 맹렬히 제 발밑만 생각하고 살아서 세상이 맹렬히 더러워진다’고 시인은 말한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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