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균의 우울증 이기기]평생의 고통 ‘탈북 트라우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죄책감-문화충격 등 스트레스
오랜기간 반복돼 에너지 소진… 주저앉기 전에 치료 받아야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최근 동아일보에서 실시한 통일의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유독 20, 30대에서 통일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이 두드러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대 응답자의 33.4%는 “통일이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탈북민 연구를 하면서 새터민들이 가진 우리 사회에 대한 불만을 듣다 보면 “남한 사람들이 통일을 바라는 것 같지 않다”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들은 대부분 북에 부모, 형제, 자녀를 남겨 두고 온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장기 행방불명자’가 되었기 때문에 북한의 가족들이 배신자 가족이라며 보위부의 감시 아래 고통 받고 있어서, 남한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재미있는 것을 보아도 죄스럽게 느끼는 분들이다.

이들은 가족들이 목숨 걸고 북한을 탈출하지 않는 이상 통일이 되어야 죽기 전에 가족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남한 ‘동포’들이 ‘내 자녀가 지금보다 더 풍족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할 때 이분들이 마음에 입을 상처는 어떠하겠는가.

이렇게 남한에 온 뒤에도 계속 겪는 스트레스와 마음의 상처 때문일까. 탈북민들의 우울감은 남한에 정착한 이후에도 처음 10년가량은 계속 증가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탈북민이 겪는 것과 같은 여러 어려운 경험을 하게 되었을 때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작은 시련들이나 한두 번의 큰 시련은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큰 시련이 반복해서 계속 주어질 때에는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의 저장고가 다 소진되어 버린다. 그 다음에는 작은 어려움이 닥쳐도 힘을 내지 못하고 주저앉고만 싶어지기도 한다. 남한에 정착한 후에 겪는 문화 충격, 하다못해 외래어가 많은 것 등도 매우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다.

탈북민 지원 정책을 보면, 부족한 점도 있기는 하겠지만, 우리나라의 현재 국력으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여력이 있다면, 당연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이전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경험을 자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마음이 우울한 상황에서는 어떠한 것도 행복한 경험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일단 우울과 불안을 치료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 임상적인 우울증이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탈북민 중에서 대다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서 정신과는 ‘49호실’로 불린다고 한다. 정신증이 있는 환자들을 단지 격리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병동의 번호가 49호이기 때문이란다. 49호실에서는 정신증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는커녕 부실한 식사를 받으며 노동에 동원되는 등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탈북민들은 남한의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기 쉽다. 이를 해소하고 탈북민들의 정신건강 관련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탈북민들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선제적으로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

‘찾아가는 치료’뿐만 아니라 탈북민 간에 만남과 교류의 장을 제공하는 것도 탈북민들의 우울과 불안을 완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직업 선택, 교육, 이성 교제, 자녀 양육 등에 있어서 남한 사회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여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모를 때, 남한 사회를 잘 아는 믿을 수 있는 친구나 멘토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좋을 것이다. 외로운 마음에 거짓으로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기꾼에게 속아 정착금을 빼앗기고 우울증이 심해진 분들을 볼 때 마음이 안타깝다.

한국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역동적이고 모두에게 더 큰 기회를 줄 ‘통일 한국’에 있다. 그리고 통일 한국의 미래는 탈북민들에게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회를 모두 아는, 두 사회 모두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정체성은 단지 북한을 탈출한 분들, 새터민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이 남한 사회에서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북한을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탈북 청년들이 있다. 한 학생은 식품영양학 박사가 되고 싶어 한다. 북한의 식량 사정이 계속 안 좋았기 때문에 이의 영향에 대한 연구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공부에 전념한다.

앞서 나는 남한 청년들의 통일에 대한 무관심을 걱정하기는 했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고 탈북민에게 관심을 가진 청년들도 있다. 우리 연구실에는 심리학과와 이공계 학생들이 많이 있는 편이다. 그런데 탈북민 연구를 하게 되면서 경제학과, 국제학부, 정치학과 학생들이 인턴십을 지원한다. 우리와 그들의 차이를 배우고 통일에 대비하고 싶다는 것이다.

의미 있는 목표를 갖는 것과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행복감을 높인다.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꿈을 가지고 하루하루 노력하는 탈북 청년들, 통일 이후의 사회에 이바지하고자 미래를 준비하는 깨어있는 남한 청년들이 한국 사회의 여러 아픔을 치유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들이 가진 긍정적 잠재력이야말로 통일의 원동력이자 자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통일#탈북#우울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