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필직론’]자유는 창조의 어머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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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미국은 지난 240여 년 동안 많은 혁명을 일으켰다. 18세기 중엽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정치혁명만이 아니었다. 라디오 혁명, 텔레비전 혁명, 인터넷 혁명, 디지털 혁명, 소셜미디어 혁명…. 인류의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을 송두리째 바꾼 모든 정보혁명의 진원지가 바로 미국이다.

1950년 상업 텔레비전이 본격 등장하자 미국 도심의 영화관, 극장, 나이트클럽 입장객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워싱턴의 경우 영화관 관람객 수가 70% 이상 줄었다. 심야 영업을 하는 가게들도 일찍 문을 닫았다. 미국은 야구의 원조. 텔레비전을 가진 사람의 40% 이상이 야구장에 가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인들이 주저 없이 텔레비전에 빠져들었다.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의 힘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법을 바꾼 텔레비전 혁명은 14세 소년이 감자 밭 고랑에서 얻은 영감과 직관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고랑은 그저 고랑일 뿐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오지 아이다호 주 오두막집에 살던 필로 판즈워스는 감자 밭을 쟁기질하던 중 가지런히 뻗어있는 고랑에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광전자 이론을 기억하고 있던 판즈워스는 고랑을 한 줄씩 스캔해서 그것을 멀리 떨어진 스크린에 전송하는 시스템을 떠올렸다. 그는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를 도형으로 그린 뒤 과학 선생님에게 보여주었다. 1921년의 일. 그 아이디어는 판즈워스의 인생이 되었다. 8년 뒤 그는 텔레비전을 발명했다.

아이디어와 지식, 정보, 상상력, 창의력에서 비롯된 그 혁명들은 바로 돈으로 직결되었다. 미국이 미디어 산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해마다 2000억 달러(약 20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것이 창조경제이다. 영국의 존 호킨스는 ‘창조경제’의 창시자. 그는 2001년 자신의 책 ‘창조경제’에서 전 세계 창조경제 핵심 산업의 43%를 미국이 차지한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창조경제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수백 년 동안 창조경제를 실천해 온 그들에게 1990년대 중반에서야 토니 블레어 총리가 창조산업을 들고나온 영국의 신조어가 새롭지도 마뜩지도 않을 터이다.

식민지 시대를 청산하고 나라를 세우면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나라가 잘 사는 길은 국민들의 언론 자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한 자유를 통해 국민들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기를 수 있으며, 정부가 바른 정치를 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곤 헌법의 조항에서부터 이런 생각을 구체화했다. 이들의 나라 세우기는 정신의 바탕을 굳건히 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긴 그들의 혜안이 판즈워스나 토머스 에디슨,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와 같은 창의적 천재가 태어나도록 한 것이다. 컬럼비아대의 리 볼린저 총장은 2009년 졸업식에서 21세기 첨단형 젊은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언론 자유와 자유언론의 위대한 원칙”이며 그것이 시대를 초월하는 경제발전의 바탕이라고 강조했다. ‘창조경제’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창조경제의 전통은 수백 년에 걸쳐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2011년 중국의 학자 3명은 중국에서도 창조산업이 시작되었으며 앞으로 중국 경제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에서 창조경제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은 창조인재의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뉴욕의 경우 전체 고용인구 가운데 창조산업의 인력이 12%이며 런던은 14%, 도쿄는 15%에 이른다. 하지만 상하이는 1%에도 못 미친다는 것. 학자들은 빨리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조바심을 냈지만 창조경제를 위한 그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중국은 창조인재를 키우는 바탕이 너무 부족하다. 중국 출신의 미국 예일대 경제학 교수인 지우 첸은 오래전부터 중국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나친 제조업 중심에서 벗어나 금융 등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켜야 하나, 언론 자유가 없기 때문에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도 2009년 “국민들이 상상력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파생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사회만이 생존할 수 있다”며 상상력의 빈곤이 언론 자유를 통제하는 중국의 가장 큰 약점이며, 그것이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정부는 정치 문제를 다루는 언론은 물론이고 국민 개인의 정치적 의사표시나 표현도 철저하게 통제한다. 공산당은 텔레비전 방송 360여 개와 신문 2200여 개를 거의 완벽하게 장악한다. 정부를 비판하는 웹사이트도 존재할 수 없다. 언론을 혁명의 도구로 여긴 마오쩌둥 시대 이래 정부에 나쁜 뉴스는 뉴스가 아니라는 공산당의 언론관에는 흔들림이 없다. 사실 국민들에게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창조인재가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미국에서 보듯 창조경제는 정신의 가치를 존중하는 전통이 켜켜이 쌓여야 성장한다. 어느 날 갑자기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몇 사람이 외친다고 이뤄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너도나도 창조경제 전도사를 자처하며 어떤 분야가 창조산업에 해당되는지를 아무리 떠들어 봐야 창조인재를 키울 수도, 창조경제를 이룩할 수도 없다. 창조경제의 뿌리가 무엇이며, 과연 창조인재를 키울 수 있는 바탕이 대한민국에 존재하는지를 냉정하게 따져야 창조경제 발전의 실마리가 풀린다.

한국 사회는 오랜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근대화의 열망 탓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 당장 열매를 가져다주지 않는 정신의 가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한국에서 언론 자유, 표현의 자유가 제대로 존재해 본 적이 없는데도 그것은 이미 낡은 가치가 되어버렸다. 국가 지도자 누구도 언론 자유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일깨우지 않았다. 아마 대학총장이 졸업식에서 언론 자유를 역설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될 것이다. 그러니 언론 자유가 마구 오용되고 남용되는데도 그 자유가 충만하다고 착각한다. 그것이 방종인지 모른다. 그 자유가 왜 세계 197개국 가운데 64위로 평가받는지 잘 모른다. 정신의 가치를 중시하는 기본을 갖추지 않으면 창조경제는 무리이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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