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조성하의 철도 힐링투어]<1>백두대간 협곡열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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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산중 비경 따라 슬금슬금… 하늘 보니 세평만 뚫렸네

시험운행에 나선 백두대간 협곡열차(V Train)가 낙동강 상류의 협곡구간인 양원역 앞 철교를 지나고 있다. 이 열차는 화차를 관광용으로 개조한 일본의 도롯코열차를 본떠 만든 국내 최초의 개방형 관광열차로 빨간색 객차의 대부분이 유리창이다. 봉화=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시험운행에 나선 백두대간 협곡열차(V Train)가 낙동강 상류의 협곡구간인 양원역 앞 철교를 지나고 있다. 이 열차는 화차를 관광용으로 개조한 일본의 도롯코열차를 본떠 만든 국내 최초의 개방형 관광열차로 빨간색 객차의 대부분이 유리창이다. 봉화=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 내가 그를 만난 건 1999년 9월. 그곳은 태백시(강원)와 울진, 봉화군(경북)이 경계를 이루는 낙동강 최상류의 오지 승부역(강릉∼동대구의 영동선)이었다. 그때 그는 발령 받아 온 지 넉 달밖에 안 된 서른한 살의 총각 역무원이었는데 당시 거기엔 열차(정기여객)가 하루 네 편밖에 서지 않았다.

무궁화호(하루 8회)는 몽땅 지나치고 최하등급인 ‘통일호’만 정차했는데 거기엔 고정 승객도 있었다. 이웃한 석포(역)로 통학하던 5명(초등학생 3명, 중학생 2명)이었다. 하긴 마을(승부1·2리) 주민들도 기차를 타긴 했다. 비록 하루 한두 명에 불과했어도. 닷새 간격이긴 해도 역사에선 소란스러운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무리 지어 춘양장(경북 봉화군 춘양면)을 오가던 주민 덕분이었다. 》

당시 내가 승부역(봉화군 석포면 승부리)을 찾았던 이유. 지난겨울―그러니까 1998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처음 운행한 ‘환상선 눈꽃열차’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승부리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이 특별한 열차는 청량리를 출발·도착역으로 ‘제천∼영월∼태백∼봉화∼영주∼제천’의 환상(環狀) 루트로 운행한 겨울철 한정 관광열차였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철도 상품이었던 터라 인기가 꽤나 높았었다. 그 덕분에 좌석은 늘 꽉꽉 찼는데 그런 승객에게 가장 관심이 높았던 곳이 여기 승부역이었다. 전혀 알려지지 않은 오지인 데다 배가 출출한 점심 때 도착해 1시간 20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 역이었기 때문이다. 역 앞 공터엔 임시 장이 섰고 눈꽃열차가 도착하면 주민들은 직접 쑨 메밀묵과 수확한 콩 등을 가져와 팔았다. 승객들은 즉석 부침개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다. 또 근처 계곡으로 산책을 다녀오는 등 때 묻지 않은 오지의 수려한 자연을 즐겼는데 이게 환상선 눈꽃열차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4월 12일부터 낙동강 최상류의 협곡구간(철암∼분천)을 달릴 관광열차 ‘백두대간 협곡열차’. 넓은 유리창을 통해 협곡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4월 12일부터 낙동강 최상류의 협곡구간(철암∼분천)을 달릴 관광열차 ‘백두대간 협곡열차’. 넓은 유리창을 통해 협곡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런 승부역이 14년 만에 다시 세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코레일이 4월 20일부터 운행하는 ‘중부내륙선 관광열차’와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모두 승부역을 지나서다. 내륙선의 운행 루트는 눈꽃열차와 거의 같은 환상형이다. 그리고 협곡열차는 내륙선에 포함된 낙동강 최상류 ‘철암(태백시)∼분천(봉화군)’의 협곡 구간만 오간다. 내륙선은 눈꽃열차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이 다르다.

우선 기존 여객열차로 운행했던 눈꽃열차와 달리 새로 제작한 특이한 구조와 외관의 관광 전용 열차가 운행된다. 운행 횟수도 다르다. 눈꽃열차는 하루 1회였지만 내륙선은 하루 4회(협곡열차는 하루 3회 왕복)다. 또 어느 역이든 내렸다가 다시 탈 수 있다는 것(두 열차 모두), 그걸 하루부터 7일까지 선택할 수 있다는 점(내륙선만), 그래서 패키지여행 스타일의 눈꽃열차와 다르게 자유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게 눈꽃열차와 다른 점이다.

이렇듯 새로운 개념의 관광열차가 운행한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13년 전 승부역에서 만났던 그 역무원이 떠올랐다. ‘온종일 사람 보기 어려워 외롭다’는 그의 말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정회, 지금은 춘양역에서 근무한다. 그도 이젠 초등학교 6학년과 5학년 두 아들을 둔 중년(44세).

그에게도 승부역은 잊을 수 없는 곳이리라. 평생의 배필을 맺어준 곳인 데다 2000년 그와 결혼한 신부가 바로 여기 승부리 태생이므로 그 인연은 승부리의 한 주민이 장모 될 이에게 그를 소개한 덕분에 이어졌다. 장모 될 이는 가까이서 찬찬히 살핀 끝에 8남매 중 막내딸의 사위로 그를 맞았다. 그런데 그가 신혼살림을 꾸린 곳은 영동선 철도직원의 절반이 산다는 영주시. 그에게 승부역은 이제 더이상 외로운 오지역이 아니었다. 씨암탉도 잡아준다는 장모가 있는 곳이어서다. 승부역을 이야기할 때 역무원 정회 씨를 빼놓을 수 없는 건 이런 승부리에 깃든 살가운 사연 때문이다.

승부역은 1955년 연말 완공된 영암선(철암∼영주)의 한 역. 1955년이라면 정전협정 체결(1953년 7월 27일)로 전쟁을 멈춘 지 2년여밖에 지나지 않은 극심한 혼란기. 그런데도 정부가 만사 제쳐놓고 건설한 철도라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터인데 그건 태백탄광에서 채굴한 석탄의 수송이었다. 역엔 그걸 알려주는 기념물이 있다. ‘영암선 개통 기념비’로 돌에 새긴 그 글씨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태백광산의 지하자원을 수송할 목적으로 군 공병대와 우리 건설회사가 이듬해 4월 8일 착공했지만 6·25동란으로 공사가 중단됐다고. 그런데 하필이면 이 기념비를 좁기로 치면 국내 역사 중 1위에 들 이 승부역에 세웠을까. 비문은 그 이유도 설명한다. 이 철도는 교량(55개)과 터널(33개)이 전체 구간(87km) 중 20%를 차지할 정도로 험준한 지형을 통과하는데 거기서도 가장 난공사 지점이 승부역이라 여기에 비를 세웠다고. 이 비는 지난달 등록문화재(540호)로 지정됐다.

승부역을 인터넷에서 서핑하면 늘 이런 글귀와 함께 뜬다.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저 드넓은 하늘이 ‘세 평’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 역이 좁은 ‘협곡’ 안에 갇힌 형국이어서다. 알다시피 낙동강이 발원한 곳은 태백시내의 황지. 이 못에서 흘러넘친 물은 황지천을 이루며 태백시내를 지나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바위까지 뚫는다. 그게 태백의 명물인 구문소다. 태백서 열차로 영주 방향으로 가다가 그 물을 만나게 되는 곳은 철암역 앞. 황지천 물은 여기서 철암천 물과 만나 한데 섞이며 비로소 ‘낙동강’이란 이름을 얻는다.

물이란 지천을 받아들여 몸집을 불리게 마련. 낙동강 역시 동점역을 지나 석포역에 이르는 동안 한층 위협적으로 변한다. 태백의 고원에서 봉화로 가면서 지형이 갑자기 낮아지는 데다가 석포천까지 가세하며 수량이 늘고 물살까지 빨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게 바로 이후 남쪽 봉화군의 험준한 산악을 헤집으며 바위를 깎고 산을 휘감으며 협곡을 빚어내는 그 물, 낙동강이다.

승부역은 바로 그 협곡의 중심에 있다. 그래서 철길과 역사가 모두 물가의 천애절벽을 깎아 겨우 고른 바위의 평평한 좁은 공간에 놓였다. 그 협곡이 얼마나 가파르냐는 승부역의 일출 일몰 시각을 보면 안다. 이즈음엔 오전 9시경에 해가 들어 오후 3시쯤 질 정도다.

‘하늘도 세 평…’은 그 협곡 절벽의 바위에 페인트로 쓰여 있는데 작자는 1963년부터 19년간 영동선 철도에 근무했던 역무원 김찬빈 씨. 승부역에 근무할 당시(1965년)에 직접 쓴 것이다. 한편 두 명이 근무하는 역 사무실은 ‘한 평 반’ 크기다.

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도움말: 박준규 철도여행 프리랜서 ‘대한민국 기차여행의 모든 것’ 공동저자 cafe.daum.net/traintripwrite(카페지기)

■ Travel Info

렛츠 코레일: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의 모든 ‘기차여행’을 통합해 부를 새로운 브랜드 명칭. 중부내륙권관광열차인 ‘오 트레인’(O Train)과 백두대간 협곡열차인 ‘브이 트레인’(V Train)을 포함한 모든 철도관광 상품을 아우른다.

▽중부내륙권관광열차(O Train):
서울∼제천∼태백∼낙동강협곡구간∼영주∼제천∼서울의 환상형 루트(257.2km·4시간 50분 소요)로 4월12일부터 매일 하루4회 운행. 열차는 네 칸 205석의 누리로 열차며 실내에선 모니터를 통해 정면의 철로풍광을 볼 수 있다. 한국철도 역사 중에 고도가 가장 높은 추전역(855m)에서는 10분간 정차. 객차엔 유아놀이방과 카페, 전망석이 있고 커플룸, 패밀리룸, 휠체어석도 있다. 1, 2, 3, 5, 7일의 패스 형태로 발매하는데 정해진 기간 중 내키는 대로 내리고 탄다. 하루권 5만4700원, 7일권 12만3000원.

▽백두대간 협곡열차(V Train):
영동선 철도의 낙동강 최상류 협곡을 지나는 ‘철암∼분천’ 구간(27.7km·1시간 10분 소요)을 하루 3회 왕복 운행. 백호 무늬의 기관차가 끄는 빨간 객차는 세 칸 158석. 좌우를 온통 유리로 마감한 친환경 특수설계의 개방형. 지붕의 태양열집열판으로 실내 전기를 공급하는 첨단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선풍기에 조개탄 난로, 비둘기호 좌석, 구식 복장의 승무원 등 복고풍이다. 역시 4월 12일부터 운행하는데 어느 역에서든 승하차한다. 승부역엔 왕복 한 시간 코스의 산책로가 있지만 양원, 비동 임시승강장에 연결되는 트레킹로는 6월에나 개방될 예정이다. 낙동강협곡비경을 감상하며 걷는 비동∼승부 협곡길이 기대된다. 요금은 8400원.

봉화군: 높은 산과 맑은 계곡, 태고의 멋이 간직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산림휴양지. 청량산(도립공원)과 청량사(템플스테이)가 있고 2015년에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도 문을 연다. 닭실마을과 만산고택, 영화 ‘워낭소리’ 촬영지가 있다. ▽연락처(054) △봉화군청 673-5800 △봉화역 672-7788 △버스터미널 673-4400 △경북종합관광안내소(오전 9시∼오후 6시) 852-6800

▼ 경북 봉화 비동 협곡 트레킹… 기암절벽 수묵화 속을 어슬렁 어슬렁 ▼

아직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비동의 낙동강상류 협곡 풍광. 바위에 뿌리를 박은 낙락장송의 가지 아래로 낙동강이 흐른다.
아직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비동의 낙동강상류 협곡 풍광. 바위에 뿌리를 박은 낙락장송의 가지 아래로 낙동강이 흐른다.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운행(하루 3회 왕복)되는 철암∼분천(27.7km)은 낙동강 최상류의 협곡. 열차 승객은 대부분 유리창으로 이뤄진 개방형 객차에 앉은 채로 오랜 세월 강물이 빚어낸 ‘V’자 협곡의 비경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속도를 시속 30km(평균 속도)로 낮췄다. 중간에 정차할 역은 모두 다섯 개(동점 석포 승부 양원 비동). 그중에서도 승부∼분천 사이의 양원과 비동은 ‘임시승강장’으로 협곡 풍광이 가장 뛰어나다.

이 구간은 한국철도에서 아주 특별한 곳이다. 두 마을(역)을 잇는 길이 오로지 철도뿐인 곳이기 때문이다. 거기엔 자동차도로는 물론이고 나무꾼 길조차도 없다. 협곡이 워낙 가파른 데다 모두 바위 절벽으로 이뤄져 여태 자동차길을 내지 못한 탓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 사람도 못가고 오직 철도로만 지날 수 있는 곳은 여기 한 곳뿐이 아닐까 싶다. 그걸 달리 말하면 그만큼 오지라는 것인데 그런 만큼 풍치도 아름다울 터이다. 그러니 거기 숨겨진 비경의 섭렵을 허용할 협곡열차 운행이야말로 모두로부터 환영받을 만하다 하겠다.

그래서 봉화군도 이참에 낙동강 최상류 협곡의 비경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도록 트레킹 루트를 개발하고 있다. 그 구간은 ‘승부∼양원∼비동’(약 10km). 낙동강을 따라 협곡의 가장자리를 걷게 되는데 출발 지점은 협곡열차가 서는 세 역이다. 그중에서도 협곡열차 개통에 맞춰 이번에 새로 설치된 ‘비동 임시승강장’을 찾았다. 이곳은 분천역에서 낙동강을 따르는 강변농로(시멘트도로)로 4.5km 거리의 영동선 철교(비동천2교량) 남단. 풍경은 물론이고 이름조차도 아직 세상에 알려진 적 없는 오지 중의 오지다.

이 승강장에서 내리면 우선 계곡을 가로지르는 낡은 철교부터 건너야 한다. 그리고 레일을 건너 강 서편 가파른 협곡 자락의 허리로 낸 나무꾼 길로 접어든다. 그렇게 해서 1km가량 걸어 들어간 가파른 협곡 안. 인공의 것이라곤 버려진 소형 포클레인 한 대와 양봉통 몇 개뿐. 길은 있지만 사람은 없었고 들리는 것이라고는 물 흐르는 소리뿐이었다. 그야말로 원시 상태 그대로였는데 그런 산중협곡은 가히 별유천지(別有天地)였다. 강안의 기암절벽과 험준한 산악의 짙은 숲도 수묵화 속 풍경 그대로다.

걷다 보니 강안엔 거대한 바위에 뿌리박고 용틀임하는 거대한 낙락장송도 심심찮게 보였다. 산길은 가파른 협곡 가장자리를 따르는데 가끔 호박돌로 뒤덮인 강변도 지난다. 승부역까지 새로 개척할 이 루트에서 가장 어려운 곳은 물가의 절벽을 깎아내 겨우 철도만 놓은 승부와 양원 사이. 봉화군은 잔교(棧橋·절벽에 가로로 박아 넣은 지지대 위로 가설한 길)를 놓아 길을 연결한다는 계획인데 개통 시기는 6월 초로 예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길이 트레커를 위해 개발됐지만 강을 끼고, 그것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협곡을 파고드는 길은 희귀하다. 그래서 비동의 협곡트레킹은 협곡열차와 더불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비경의 트레킹 코스가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봉화=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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