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61>견딜 수 없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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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네
―정현종(1939∼)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가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변하지 않는 게 없다. 지나가지 않는 게 없다. 시간의 물살에 먼지처럼 가뭇없이 휩쓸려가는 삶의 그 덧없음을, ‘갈수록, 일월(日月)이여/내 마음 더 여리어져’, 못 견디겠다고 시인은 탄식한다. 절절히 음악인 탄식! 마치 시간이 흐르는 자취같이, 물결 흐르듯 파도치듯 바람 불듯, 리듬 실린 시어들. 흐느끼고 싶게 공허하고 쓰라린 마음을 시의 음악성이 감미롭게 어루만진다. 어려운 말 하나 없이 깊고 아름다운 시!

무상감(無常感)이란 인간만이 가진 생의 감각이다. 인간만이 시간과 함께 무작정 흐르지 않고, 종종 기억이라는 둑 위에 올라 멀리 떠내려가는 얼굴, 얼굴, 얼굴들을 바라본다. 아, 헤어지기 힘들어 만나기 두려워라! 무상해서 소중한 인연들이여. 무상감의 반대는 싫증이리라.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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