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대-인사가 만사다]<5> 검찰총장- 역대 총장 코드인사 수난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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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총장’의 결말… 외압-단명 혹은 檢亂


“왜 그러느냐 정말…. 그냥 차장 말 좀 들어라.”

1999년 12월 17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총장실. 당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옷 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이종왕 수사기획관이 박순용 당시 검찰총장과 마주 앉았다. 이 기획관이 “두 사람(박주선 당시 대통령법무비서관과 김태정 전 법무부 장관)이 공범인데 한 사람(김 전 장관)만 구속하면 어떻게 합니까. 총장님이 직접 판단해야지 왜 차장 의견만 따르라고 합니까”라고 항의하자 박 총장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왜 신 차장 말을 안 듣느냐”라고 했다. 이 기획관은 총장실을 나와 사표를 쓰고 검찰을 떠났다. ‘신 차장’은 김대중 정부 초기 전남 출신으로 검찰의 최고 실세이던 신승남 당시 대검 차장이다.

이 일화는 정권의 코드인사가 불러온 검찰총장 수난사의 단면을 잘 보여 준다. 정권이 지연 학연으로 얽힌 검찰총장을 임명하고, 총장은 정권을 바라보며 검찰을 무리하게 지휘하다 스스로 몰락한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정치검찰 논란이 일었고 검찰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 실세 차장에게 ‘복종’했던 총장

김대중 정부 초기 대구·경북(TK) 출신의 박순용 총장 시절 많은 검사가 “실제 총장은 신승남 차장”이라며 냉소했다. 대검 중수부는 김태정 전 장관의 부인 연정희 씨가 옷 로비 사건에 연루됐다는 내용이 담긴 청와대 보고서를 박주선 비서관이 김 전 장관에게 몰래 건넨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를 벌였다. 그런데 청와대가 신 차장을 앞세워 김 전 장관은 구속하고 박 비서관은 구속하지 못하도록 수사팀에 압력을 넣었던 것. 당시 수사 관계자 A 씨는 “청와대는 이미 물러난 김 전 장관을 여론 무마용 희생양으로 삼고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지만 수사팀의 강한 반발로 결국 뜻을 접고 박 비서관 구속을 허락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수사 압력에 반발한 이 기획관은 사표를 냈지만 신 차장은 총장이 됐다. 이후 신 총장은 누나와 동생이 모두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낙마했고, 자신도 내사 정보 유출 혐의 등으로 형사처벌까지 받았다.

○ 코드로 중용하고, 아니면 내치고

역대 정권의 검찰총장 인사는 말 그대로 ‘내 식구’는 임명하고 ‘남’이면 내치는 방식이었다. 전직 검사장 B 씨는 “김영삼 정부 초기 TK 출신 박종철 대검 차장을 총장에 올렸다 6개월 만에 하차시킨 일은 코미디였다”라고 회고했다. 당시 박희태 법무부 장관이 딸의 이중국적 문제 때문에 10일 만에 낙마하자 김두희 당시 검찰총장을 장관에 임명하고 박 차장을 서둘러 총장에 임명했다. 하지만 ‘소통령’으로 불리던 김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가 얼마 뒤 박 총장 교체를 지시해 박 총장은 6개월 만에 물러났다. 검찰 간부들이 2년 임기를 내세우며 만류했지만, 현철 씨는 “통치행위”라는 말로 일축했다고 한다. 김영삼 정부 시절 김기수, 김도언 총장은 모두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 출신이고 김기수 총장은 김 대통령의 경남고 후배다.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검찰총장 자리에서 쫓겨난 경우도 있다. 노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인 2003년 3월 당시 김각영 검찰총장은 취임 5개월 만에 물러나야 했다. 노 대통령이 취임 직후 공개적으로 “검찰 수뇌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총장을 찾기 위해 기존 총장의 옷을 강제로 벗긴 또 다른 코드 인사의 사례다.

○ 현 정부의 코드 인사는 검란 불러

이명박 정부의 검찰 코드 인사는 고려대 출신 약진과 TK 출신 기득권 유지로 정리할 수 있다. 수뇌부 내분 사태의 책임을 지고 이달 초 물러난 한상대 총장 임명도 코드 인사의 결과로 꼽힌다. 고려대 출신인 한 총장은 현 정부에서 법무부 요직인 검찰국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총장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수뇌부 내분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 속에 총수 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뇌물 검사로 검찰 역사에 오명을 남긴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부장급)가 2008년 요직인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에 임명된 것도 TK 출신(경북 경주)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김 검사는 결국 특수3부장 시절 비리를 저질러 이번에 검찰의 명예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사태의 불씨를 제공했다.

전지성·장관석 기자 verso@donga.com
#박근혜#코드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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