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대-인사가 만사다]<5> 검찰총장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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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아닌 국민의 ‘칼’…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내가 이십 몇 년을 검사 생활을 했잖아요. 그런데 역대 검찰총장을 돌아보면 검사들이 정말 ‘총장감이다’라고 생각한 분이 검찰총장이 된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네요.” 검찰 고위간부 출신 변호사 A 씨는 역대 검찰총장 인선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자격 없는 총장이 조직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고, 결국 검찰이 오늘의 위기를 맞은 것”이라고 했다. 수도권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역대 총장 가운데 검사들의 사표(師表)를 거의 찾을 수 없다는 것은 검찰의 비극이자 우리 사회 전체의 비극”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검찰총장 임기는 2년이다. 검찰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1988년 검찰청법에 임기가 명시됐다. 임기제 총장이 지금까지 17명이나 나왔지만 임기를 채운 사람은 6명뿐이다. 임기를 채우면서 독립적으로 수사하지 못하고 정권과의 역학관계 속에서 때론 밀려나고, 때론 스스로 물러났다.

박근혜 정부에서 검찰을 이끌 ‘총장의 자격’은 무엇일까. 새 정부 첫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검찰 독립을 확보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①내부 신망이 두텁고 청렴한 사람

새 정부의 첫 총장은 무엇보다 검찰 구성원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인물이어야 한다. 특히 특별수사부와 공안부 등 주요 부서를 경험해 각 부서의 특성과 고충을 두루 이해할 수 있는 총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공직자로서 청렴성은 당연히 갖춰야 할 덕목이다. 검찰 출신 변호사 B 씨는 “천성관 전 후보자처럼 인사청문회에서 비리가 드러나 낙마하면 검찰은 땅바닥에서 일어설 기회조차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내부에서 존경받은 몇 안 되는 총장 가운데 한 명인 이명재 전 총장은 신승남 총장이 동생의 비리로 불명예 퇴진한 뒤 흐트러진 검찰을 추스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전 총장은 10개월의 재임 기간에 정치인 등 외부 인사와의 접촉을 끊고 구내식당에서만 식사를 했다고 한다.

②권력을 사유화하지 않을 사람

총장의 막강한 권한을 자신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데에도 이견이 없다. 김영삼 정부 시절 김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 출신 김도언 전 총장은 검찰총장 임기를 마친 직후 여당이던 민주자유당 부산 금정을 지구당위원장을 맡아 이듬해 이 지역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대표적인 정치검사로 세간의 입길에 오르내렸다.

1997년 대선을 한 달 앞두고 불거진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김태정 당시 총장이 “대선 이후에 수사하겠다”며 수사를 공개적으로 접은 것에 대해서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많다. 당시 검찰 내부에선 김 총장이 김 후보 측에 수사 유보 결정을 미리 알려줬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그는 총장을 거쳐 법무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김 대통령과 동향(전남)이었던 신승남 전 총장도 권력 사유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신 전 총장은 전임자인 박순용 총장의 임기 2년간에도 ‘실세 대검 차장’으로 불리며 사실상 총장 역할을 해 논란이 됐다.

③조직 장악력과 배짱을 가진 사람

검찰 고위간부 C 씨는 “흐트러진 조직을 정비하고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후배 검사들을 이끄는 리더십과 함께 청와대와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치력이 총장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송광수 총장은 청와대와 갈등을 빚을 때마다 “그런 거 막아주라고 총장이 있다” “청와대 불만에 개의치 않는다” “중수부 수사가 지탄받으면 내 목을 먼저 치겠다” 등의 공개 발언으로 소신을 굽히지 않아 국민과 조직의 신뢰를 받았다. 반면 임채진 전 총장은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처벌 여부에 대해 결정을 미뤘다.

④검찰 역할과 본분을 분명하게 아는 사람

검찰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명확히 알고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총장의 중요한 자격 요건이다. 검찰 고위간부 출신 D 변호사는 “좋은 검찰총장은 국민과 검찰 내부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하며 이는 ‘부패 척결’이라는 검찰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명재 전 총장은 서울고검장 퇴임식에서 후배들에게 “서민을 위한 ‘백마 탄 기사’가 돼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어떤 추정(推定)도 하지 말고 어떤 일도 행운에 맡기지 말라. 어떤 사건도 자신의 정당성에 확신이 설 때까지는 재판에 넘기지 말라”고 강조했다. 검찰 직분에 대한 분명한 소신이 있었던 셈이다. 반면 김영삼 정부 시절 김기수 전 총장은 ‘한보 비리’와 관련해 김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를 무혐의 처분했다가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고교 선배인 김 대통령에 대한 보은 차원에서 수사를 덮으려 했다는 것. 두 달 뒤 재수사를 거쳐 현철 씨는 구속됐고 김 전 총장은 옷을 벗었다.

⑤좋은 검찰총장 만들려면 대통령이 욕심을 버려야 한다

미국 유럽과 달리 한국이 ‘대통령-법무부 장관-검찰총장’으로 이어지는 3중 구조를 짠 것은 총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다. 제도가 갖춰진 만큼 총장이 용기와 정치력만 있다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력으로부터 검찰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대 정권은 ‘사전 보고’와 ‘인사권’으로 검찰을 통제했다. 정권 실세가 연루된 사건 수사를 앞두고 검찰이 법무부에 보고하면 이 보고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거쳐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사건 처리에 대한 부적절한 간섭과 통제를 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인사권도 마찬가지다. 관련법상 검찰총장은 물론이고 모든 검사의 임명과 보직을 대통령이 하도록 돼 있다. 결국 대통령이 검찰을 권력 유지의 도구로 삼으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검찰총장과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검찰 고위간부 E 씨는 “노무현 정부 초기 노 전 대통령이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공언하자 일부 검찰 간부들이 ‘인사권을 총장에게 주고 사전보고를 없애 달라’고 제안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도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이라며 “이런 고리를 끊지 않으면 어떤 정부에서든 검찰은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창봉·강경석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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