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14>어머니 마음으로 베푸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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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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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거사비(去思碑)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워낙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떠난 관리를 그리워하여 세운 비석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리움이 지나쳐 눈물까지 흘린다 하여 ‘타루비(墮淚碑)’라고도 하였습니다. 백성이 진심으로 송덕비를 세워주기도 했지만 스스로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임기 전에 세워놓고 간 것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14세기 후반 하윤원(河允源)이라는 사람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치악산에 살던 운감(云鑑)이라는 승려가 이렇게 시를 지어 보냈습니다.

어머니가 곁에 있을 때 그 은혜를 모르다가 떠나고 나면 주리고 추워서 하소연하는 법입니다. 어머니가 갓난아이를 돌보는 것이 정치입니다. 정약용(丁若鏞)은 이 시를 목민관을 위한 지침서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인용하면서, 머물 때 드러난 칭송이 없다가 떠나간 후에 그리워하는 것은, 자랑하지 않고 몰래 선행을 베풀어야만 가능한 일이라 하였습니다. ‘시경’의 ‘소남(召南)’에는 어진 관리의 아름다운 정사를 칭송하는 시가 많이 실려 있습니다. 이런 시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더라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배불리 먹이고 따뜻하게 해주는 어머니와 같은 정치가가 없어서 그러한 것이겠지요.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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