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6>산을 오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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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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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다리 힘을 기르려고 산에 오르지만, 산을 오르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도 하게 됩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함께 조선 전기 유학을 대표하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은 지리산을 유람하면서 “산을 보고 물을 보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看山看水看人間世)”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산에 오르는 일은 산과 물을 보면서 인간사를 성찰하는 계기가 됩니다. 고려 말의 학자 정총(鄭摠·1358∼1397)이 산을 오르면서 돌아본 것은 학문입니다. 높은 산은 한 걸음 오를 때마다 시야가 넓게 트입니다. 학문도 마찬가지겠지요.

조선 후기의 큰 학자 정약용(丁若鏞)은 ‘그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不亦快哉行)’라는 시에서 “깎아지른 절정을 힘겹게 올랐을 때, 겹겹의 운무가 시야를 막고 있다가, 저녁 무렵 서녘 바람이 해를 향해 불어 와, 천만 개 봉우리가 일시에 다 드러나면, 그 얼마나 통쾌한가(초嶢絶頂倦游m 雲霧重重下界封 向晩西風吹白日 一時呈露萬千峯 不亦快哉)”라고 하였습니다.

한 걸음 오를 때마다 시야가 트이고 마음이 열립니다. 가는 길이 험하고 안개가 자욱하지만 정상에 서면 이처럼 통쾌한 법입니다. ‘논어’에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다(仰之彌高 鑽之彌堅)”는 말이 나옵니다. 성현의 경지가 그처럼 이르기 어려우니 연찬(硏鑽·학문을 깊이 연구함)을 거듭하라는 뜻입니다. 이 대목에서 조선 중기의 학자 노수신(盧守愼)이 “산에 오르면서 정상에 뜻을 두지 않는다면 이는 스스로 그만두는 것이다(登山而不志於絶頂)”라 한 명언을 외고 싶습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시#조식#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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