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의 경제 프리즘]朴-文-安 ‘증세 토론’ 시작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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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호 논설위원
허승호 논설위원
대선 분위기가 가열되면서 무상교육 및 급식, 노인복지, 반값등록금 등에서 조(兆) 단위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박근혜 문재인 캠프가 내놓은 동남권 신공항은 지역공약이지만 이것 하나가 10조 원짜리다. 박 캠프에서는 10조 원 규모의 경기부양 카드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문 캠프가 하겠다는 무상의료에는 100조 원 단위의 돈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뿐인가. 후보들은 재래시장에 가선 상인들이 솔깃해 할 말을, 휴전선에서는 장병들을 겨냥한 발언을 한다. 이런 약속을 지키는 데 필요한 재원은 정확하게 집계되지도 않는다.

세금 얘기 안 하는 후보들의 비겁함

‘복지=세금’ 등식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후보들은 증세(增稅) 방안을 말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서민과 중산층에 직접 적용되는 세금 인상은 없다”며 에둘러간다. 최근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공약 이행을 위해 19%인 조세부담률을 21%로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가 하루만에 “당장 증세 계획은 없다”고 번복했다. 왜 이러는 걸까.

이 이슈에서 가장 전향적인 쪽은 문 캠프다. 부자 증세로 20조 원을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이 캠프의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은 “후보들이 증세 논의를 회피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태도”라며 “종합부동산세가 가장 좋은 세금”이라고 말했다. 내친김에 무상의료는 무슨 돈으로, 어떻게 할지도 얘기하기 바란다.

개별 공약의 이행에 필요한 돈은 얼마인지, 증세한다면 어느 계층에 어떤 세금을 얼마나 더 부담시킬 것인지, 구체적으로 종부세나 부유세를 매길지 부가세를 인상할지 얘기해야 한다. 법인세를 올릴지, 그렇다면 경쟁력과 일자리에는 악영향이 없을지 설명해야 한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증세와 복지 욕구를 함께 자제하자”고 호소해야 한다.

그리고 후보 간 논쟁을 통해, 전문가 평가를 통해, 그리고 언론 검증을 통해 각자의 방안이 가능한지, 올바른지 가려야 한다. 차제에 논쟁의 무게중심이 복지에서 세금으로 옮겨가야 한다. 증세 하나만을 주제로 한 ‘후보 간 끝장토론’이 필요한 판이다. 그래야 유권자들이 ‘복지 OK, 증세 NO’의 안대를 벗고 올바로 판단할 수 있다.

전광우 국민연금 이사장이 “고령화가 예상보다 빨라 연금 고갈도 앞당겨졌다”고 걱정했다. 재정은 안 그런가. “한국 재정은 건강한 편”이라는 말만 믿고 있다간 큰일난다. 정부는 총선 때 양당이 내놓은 공약을 이행할 경우 연간 54조 원씩 더 든다고 추정했다. 대선공약까지 얹혀 짓누르면 연 300조 원 남짓한 우리 재정은 금방 결딴난다. 국제적 천덕꾸러기가 돼 가는 스페인은 2007년까지만 해도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36%에 불과한 대표적인 건전재정 국가였다.

사실 증세뿐 아니라 후보들이 말하지 않는 것은 여럿 있다. 지금 우리 경제가 선 곳은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초입이 아니다. 저성장과 장기불황을 앞둔 엄혹한 때다. 누가 당선되든 취임 직후부터 경제침몰, 실업, 가계 붕괴의 위협에 맞서야 한다.

예능프로엔 나가면서 정책토론은 회피

내놓을 만한 뾰족한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돈과 재정을 풀고 환율을 늦추는 거시 대책은 해법이 아니다. 신성장동력을 찾고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미시 대책이 근본처방이긴 하지만 효과가 너무 늦게 나타난다. 문제는 세 후보에게서 이런 고뇌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 후보는 종북(從北), 역사인식, 정치개혁을 무기로 상대를 공격하는 일에 열심이다. 경제민주화는 과열 국면이다. 이런 거대담론도 중요하지만 증세, 침체, 실업 등 국민의 실질적 삶에 영향을 주는 이슈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해야 한다. 세 후보에게 요구한다. 증세 토론부터 시작하라. 예능 프로그램엔 앞다퉈 출연하고, 신문-방송의 ‘그림이 될 만한’ 이벤트는 하루하루 챙기면서 막상 공개토론은 피하는 후보라면 표를 주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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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대선#증세#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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