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사형 집행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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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묻지 마 범죄’와 ‘성폭력 범죄’가 잇따라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난데없이 피해를 당해 평화로운 가정이 무너진 피해자와 유족들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갈가리 찢기는 듯합니다.

약자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강간살인범, 인면수심의 연쇄살인범과 성폭행범을 줄이려면 사형 집행을 서둘러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사형 집행이야말로 또 하나의 인권 침해라고 반발합니다.

동아쟁론 6회의 주제는 ‘사형 집행을 둘러싼 찬반’입니다. 국가의 역할, 법의 역할 그리고 인권의 문제를 어디까지 생각해야 하나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국은 유족이 보는 앞에서 사형집행 ”▼


이영란 숙명여대 법대 교수
이영란 숙명여대 법대 교수
이론적으로나 이상적으로 사형제는 폐지가 바람직하다. 궁극적으로 범죄 없는 사회가 된다면 사형제는 불필요하다. 더구나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선성(善性)과 악성(惡性)이 공존하는데, 생명은 고귀하고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러나 무참히 살해된 피해자 가족의 억울함과 분노, 고통과 슬픔을 국가가 대신해서 좀 더 현명하고 차분하고 합리적으로 대처하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형벌권 행사이다. 우리 형법에는 형벌의 한 종류로 사형이 규정돼 있고 법원에서도 실제로 아주 드물게 사형 선고를 하고 있다. 법무부가 현재 국회에 제출하기 위해 준비하는 형법 개정안에도 사형 제도는 존치시키되 가능한 한 신중하게 선고하도록 했다.

인권 선진국인 미국도 33개 주가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다. 사형수에 대해 총살형과 독살형을 병행하다가 2004년 이후부터는 피해자 가족이 직접 보는 앞에서 독극물을 주입해 사형을 집행하고 있다.

폐지론자들은 사형제도가 야만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법(法)은 국민의 약속이다. 그 약속에 따라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야만적인지, 야만적 행각으로 다수의 생명을 박탈한 범죄자들의 생명권을 보장해 대다수 국민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이 야만적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1997년 말 사형이 마지막으로 집행된 후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사형수 60여 명의 집행이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14년 동안 사형 집행이 안 되어 국제앰네스티에 의해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됐다.

형사소송법 제463조에 따르면 사형은 법무부 장관의 명령에 의해 집행한다. 확정판결 이후 6개월 이내에 해야 하고 집행의 명령이 있으면 5일 이내에 집행하게 되어 있다.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규정이 아니라 해야 하는 강제 규정이다.

그런데 국가의 최고 법집행기관인 법무부 장관이 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 1998년 47대 법무부 장관부터 현재 62대 장관까지 16대에 걸쳐 장관 15인이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공무원이 공무를 수행할 때는 특정 종교적 신념, 사적 감정이나 편견은 배제해야 하며 복지부동의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사이 살인범죄로 인해 살해된 사람은 1만 명이 넘는다. 잘못한 만큼 처벌받는 것이 형사 책임주의 원칙이며 이러한 원칙 아래 사형제도는 형벌의 경고 기능과 범죄예방 기능을 무시하고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 그 중한 불법 정도와 책임에 상응하는 형벌을 부과하는 것이다. 다수의 인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범죄자에게 한정적으로 부과하는 사형이 과도한 형벌이라고 볼 수 없다. 20명을 무참히 살해하고도 자신의 목숨만은 보장받는다는 게 사형 폐지론자들의 파생논리이다.

헌법재판소도 사형제 존폐 문제와 관련해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입법부가 결정할 입법정책의 문제라고 한 바 있다. 즉 국민의 생각과 상식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여론조사를 해보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사형제에 찬성하니 폐지 주장은 일반 국민의 정의 관념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폐지론자들의 주장처럼 생명이 이념적으로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할지라도 생명에 대한 법적 평가는 가능하며 생명권의 박탈이 곧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게 아니라는 건 헌재의 판단이다. 국민의 기본권도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는 게 헌법정신이다.

가장 중한 형벌인 사형을 논할 때 형벌의 기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응보보다는 교화 개선, 일반예방보다는 특별예방이 현대 형벌의 기능이자 목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누가 뭐래도 형벌의 기능에서 응보기능과 경고기능을 부정할 수 없다. 엄정한 처벌만큼 최선의 예방책도 없다.

사형제가 있다고 해서 선진국이 못되고 인권국가가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법 집행이 제대로 안 돼 법치국가적 면모를 갖추지 못하고,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교정정책이 잘못돼 재범률이 높아 범죄공포지수가 높아지고, 일상생활에서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선진국 진입을 앞둔 한국의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키는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 로스쿨, 일리노이 법대 교환교수, 한국형사법학회 회장, 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 경찰위원회 위원, 교원징계재심위원회 위원,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현재 법무부 형사소송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살인기계들 사형해봐야 효과없다”▼

김형태 변호사
김형태 변호사
‘추적자’라는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오금이 저려온다. 사람을 토막 내서 정육점 쇠고기, 돼지고기처럼 죽 걸어 놓았다. 범인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살인기계로 행동한다.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귀신보다 더 무섭다. 귀신은 그래도 원한을 풀기 위해서라거나, 뭐, 나름 이유가 있다. 저 악당을 어쩔꼬. 그래, 저런 인간도 아닌 놈은 그저 잡아 죽여야 돼.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저 괴물은 어디 하늘에서 혼자 뚝 떨어진 게 아니다. 그 부모가 있고, 친·외조부모가 있고,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2명, 4명, 8명, 16명…. 2의 제곱의 비율로 저 괴물에게 유전자를 넘겨준 사람들 수가 늘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같은 유전자 풀을 공유하는 친척들이다. 자손으로 내려가도 마찬가지다. 내 10대손에서 저런 자가 나올 수 있다. 불가에선 이를 연기(緣起), 만물이 서로 기대어 생겨났다고 하던가.

이런 살인 기계들에겐 사형도, 심지어 영원한 형벌인 지옥도 전혀 두렵지 않다.

소설이 원작인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순간’에 나오는 살인자도 평범한 사람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순간적으로 사람을 죽인다. 관객들은 그의 사형 집행을 슬퍼한다.

얼마 전 경기 의정부와 서울 여의도에서 아무에게나 흉기를 마구 휘두른 이들은 또 다르다. 우리 사회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자본주의가 지배한다. 중하층은 거기서 벗어날 희망이 거의 없다. 1인 가구가 제일 많다. 궁핍의 고통을 같이 나누고 위로해 줄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없다. 20, 30대의 절대적 빈곤층이 16만 명이나 된다. 취직은커녕 당장 한 끼가 버겁다.

외톨이 은둔자가 된 이들은 자신도 그냥 죽고 싶거나, 아무나 죽이고 싶어진다. 살인 자체를 즐기는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특정인을 죽이고자 하는 구체적 원한관계도 없다. 그저 능력이 좀 ‘모자라는’ 사람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이리된 거다.

이들에게 사형시키겠다고 을러 보았자 별로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이미 자살도 수없이 생각해 본 터다. 오히려 의정부나 여의도 사건 모두 되도록 사람이 많은 곳에서 보란 듯이 사람을 찔렀다. 적어도 그 순간만은 형을 피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런 유형의 살인자들은 지금 같은 사회체제가 지속되는 한 끊임없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날 것이다.

살인기계, 복수를 위해 살인하는 사람, 경제·사회적으로 떠밀려 자기를 죽이거나 반대로 아무나 죽이고 싶은 은둔형 외톨이…. 어느 경우에도 사형제는 억제수단이 되지 못한다. 유엔의 연구결과도 사형제와 범죄억제력은 별 상관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살인으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자들은 그저 사형으로 한 방에 제거해 버리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적 사고요, 일종의 사회적 약자인 은둔형 외톨이 살인자들을 끊임없이 양산하는 토대다.

그래도 나쁜 짓을 한 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러한 응보감정은 정의 관념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그 범죄의 대가가 꼭 사형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감형 없는 종신형도 충분히 대가가 될 수 있다.

흉악범이 사람을 죽였다 해서 이성의 결집체인 국가도 그와 똑같이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고 선언한다. 여기서 ‘모든 국민’은 착하고 모범적인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이며, 그걸 누가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분명 ‘모든 국민’이라고 했으니, 모자란 이도, 악당도, 사이코패스도 모두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 이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서나 불경의 가르침과 같은 차원의 헌법적 고백이다.

흉악범으로부터 사회를 지키기 위한 대안으로도 감형 없는 종신형은 충분하다.

베네수엘라는 150년 전에 이미 사형을 폐지했다. 유럽연합도 사형이 완전히 없어졌다. 세계 102개 나라가 법률상 폐지, 38개국이 10년 이상 집행이 없었다. 유엔도 사형 폐지다. 왜 그럴까. 인류가 다 착해졌나? 우리보다 흉악범이 적은가? 아니다.

모든 인간의 존엄을 믿고, 또 모든 인간이 존엄하게 되도록 사회를 바꾸자는 뜻이다.
::필자 소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2009년 사형제 위헌제청신청 대리인을 맡는 등 사형제 폐지 운동을 해왔다. 현재 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이며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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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쟁론#사형 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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