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데이비드 브룩스]선한 사람이 악행을 저지를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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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주변 사람들이 전하는 살인마의 과거 얘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들은 그토록 착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던 사람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에 대해 당혹감을 나타낸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시민 16명을 살해한 미군 병사 로버트 베일스의 친구들도 비슷한 반응을 나타냈다. 옛 친구들과 선생님은 홱 돌아버리기 이전의 그를 사려 깊고 사교적이며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그의 어린 시절 친구는 “그 사람은 우리가 알던 보비(로버트의 약칭)가 아니다. 뭔가 엄청나게 끔찍한 일이 그에게 일어난 게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잘 알고 칭찬해왔던 누군가가 어린아이를 죽였다면 누구라도 큰 충격에 빠질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래 선하다는 우리의 세계관으로는 이런 상황을 생각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세상의 끔찍한 사건들은 아돌프 히틀러나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같이 근본적으로 비뚤어지고 악한 소수의 사람들이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내면의 악(惡)을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안이한 양심을 부여하곤 한다. 그래서 선량해 보이는 누군가가 끔찍한 일을 저지르면 할 말을 잃고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 일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텍사스대의 데이비스 버스 교수는 학생들에게 진지하게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이 있는지, 어떤 공상을 해봤는지 글을 쓰라는 과제를 내줬다. 버스 교수는 남학생의 91%, 여학생의 84%가 구체적이고도 생생한 살인 구상을 세워 본 적이 있다는 결과에 깜짝 놀랐다. 그는 일부 학생들은 살인 직전 단계까지 가봤다는 점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한 여학생은 폭력적인 옛 남자친구의 가슴을 칼로 찌르기 위해 저녁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다른 남학생은 옛 친구의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그의 폐를 못 쓰게 만들어 죽이는 단계적인 살인 계획을 세웠다. 버스 교수는 이런 생각들이 단지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보다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피조물의 후예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간이 천부적인 킬러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진짜 중요한 문제는 사람들이 ‘살인을 왜 저지르는지’가 아니라 ‘어떤 이유로 살인을 참느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살인마들은 대개 감정과 자제력을 억누르는 환경에서 살아온 경우가 많다. 집단학살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오랜 기간 참아온 공포는 적대적인 상대방의 취약성을 발견하는 순간 격렬한 분노로 변한다.

수백 년 전 사람들 대부분은 선량하던 사람이 갑자기 살인을 저질러도 지금처럼 크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성품의 중심에 사악함이 도사리고 있다는 세계관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16세기 종교개혁가 장 칼뱅은 사람은 악하게 태어난다고 믿었다.

이런 초기의 세계관은 한쪽이 우세한 오늘날의 세계관과는 달리 빛과 어둠을 모두 가지고 있다. 영국 작가 C S 루이스의 말처럼 평범한 사람이란 게 없을 수도 있다. 버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끔찍한 성질과 비범한 영웅적 자질을 모두 갖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오래된 세계관에 따르면 베일스는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선과 악이 혼재된 인물이다. 인간은 항상 자기 내부의 선함을 강화하고 악에 저항하는 투쟁을 벌이며, 더 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작은 위반사항을 감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분위기에 휩쓸린다면,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영혼을 좀먹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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