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31>정여창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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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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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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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군 함양읍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낮은 산과 넓은 들로 둘러싸인 편안한 마을이 나온다. 200년 이상 된 고택이 즐비한 개평마을이다. 여기에 스승인 김종직과 함께 조선 오현(五賢)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일두 정여창(一두 鄭汝昌·1450∼1504)의 고택이 있다.

이 마을에는 일두 고택 외에도 풍천 노씨 대종가와 오담 고택, 하동 정씨 고가와 노 참판댁 고가 등이 흙담과 흙담 사이의 길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길을 따라가다가 높은 솟을대문이 나타나는 곳에 이르면 정려패(旌閭牌·효자와 충신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내린 상패)가 다섯 개나 걸려 있는 집이 나온다. 이 집이 정여창의 고택이다.

지어진 당시의 원형을 추정하기 매우 어렵지만 사랑채 앞의 석가산(石假山) 조형은 어느 정도 원형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안채는 사랑채가 지어진 100년 후에 지어진 것이다. 이 집은 경남의 사대부 살림집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경남 지방의 사대부 집은 경북 지방의 같이채 배치와 달리 따로채 배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집 역시 사랑채, 안채, 안사랑채, 별당 등이 따로채를 이루며 담과 마당으로 나뉘고 결합돼 있다.(그러나 이런 지역적 특징은 건축을 이해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후와 지리, 인문적 조건에 따라 그런 배치가 나왔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건축에서도 학제 간 연구가 절실한 이유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사랑채 앞에 만든 석가산이다. 석가산은 돌을 쌓아 만든 산이다. 풍수적인 비보(裨補)로 쌓는 조산(造山)과 다른 점은 규모가 훨씬 작고 관념적이라는 것이다. 작은 규모지만 산과 바위, 물과 나무가 모두 들어 있다. 한마디로 동양 전통의 신선사상을 조형물로 나타낸 것이다. ‘축경(縮景)’이라고도 하는데 산수를 줄여서 즐긴다는 뜻으로 석가산과 분재, 수석 등을 포함한다.

이 석가산을 즐기는 장소가 바로 사랑채의 누마루다. 마치 석가산과 조응하듯이 활달한 처마를 펼치고 있는 이 누마루는 정여창 고택의 백미다. 안채와 사랑채가 각각 남서향과 동남향으로 방향을 달리하는 것도 다른 안대(案對)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깥의 풍경을 빌리고, 또 줄여서 마당에 들여 놓은 집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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