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있게한 그 사람]김재인 성신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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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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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서 촛불켜고 식사하던 노부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보통의 기준에 따르면 나는 여행을 좀 많이 한 셈이다. 유럽을 사랑해서 유럽에서 사온 책자와 배지를 보면 금방 흥분한다. 여행은 내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덕분에 누구에게나 “내가 부자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윌리엄 워즈워스가 시 ‘수선화’에서 수선화가 준 자연의 선물을 떠올리면서 기쁨에 잠기듯, 나 또한 여행의 선물 보따리를 열어보면서 마음으로 기쁨의 춤을 춘다.

미국 여행은 유럽 여행과는 다른 차원에서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미국 여행은 관광이 아닌 연구가 목적이었다. 1970년대의 가난한 한국인에게 미국은 축복 받은 나라로 보였다. 끝없이 펼쳐지는 대평원, 검은색의 비옥한 땅. 지금도 미국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그곳의 첫인상을 물어보곤 한다. 미국은 워낙 넓어 통틀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동일한 답변은 ‘축복의 나라’다.

미국은 내게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인 자유와 평등을 알게 해 주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개별적인 삶을 존중해 항상 거의 모든 장소에서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다. 여러 등급의 백화점이 있는데, 사람들은 자기 수준에 걸맞은 백화점을 찾아갔다. 상위 백화점을 가지 못해 속을 태우거나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민주적인 삶은 자기가 만든 수준에 알맞게 그리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런 삶이었다. 이것이 내가 본, 민주주의가 신봉하는 자유와 평등의 삶이었다.

미국 땅에서 내가 받은 첫 번째 선물은 삶의 풍요가 선사하는 아름다움이었다. 호놀룰루에 잠시 들렀을 때의 일이다. 저녁 무렵 와이키키 해변에서 노부부가 자동차에서 내렸다. 말쑥한 차림의 그들은 만찬을 위해 식탁보와 촛대까지 준비해 왔다. 해질녘 해변에서 촛불을 켜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식사를 하는 노부부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는 대학원의 미국 친구에게서도 삶의 멋과 풍요를 발견했다. 책을 보며 답안지를 작성하는 종합시험 날 친구의 큰 가방에서 책과 함께 도자기 찻잔이 등장했다. 큰 충격이었다. 불안하고 초조했던 나와 달리, 그녀에게는 시험 날도 평소와 똑같은 날이었다. 시험 도중 차를 마시되 종이컵은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시험 날의 도자기 찻잔은 그녀를 ‘아름다운 삶의 수호자’라고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미국은 내게 진실한 사랑도 선물했다. 1983년 논문 재료를 수집하고자 코넬대를 찾았다. 겨울방학 두 달 동안 코넬대 경영학과 교수 집에 머물렀는데 미국 중산층의 삶이 매우 소박하다는 것을 그 부부의 생활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평범한 부부에게서 ‘진정한 사랑’이라는 값진 선물을 받았다. 힘들게 대학을 다녔던 그들은 결혼기념일에 특별한 행사를 했다. 백인 부부가 뉴욕에서 어렵게 지내는 흑인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 일주일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주었다. 그들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미국의 정신인 기독교의 참된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미국 대학의 문학 강의는 질문에서 시작해 질문으로 끝났다. 셰익스피어 기말시험 문제를 잊지 못한다. 강좌에서 10권의 희극과 비극을 읽었지만 시험 문제로 나온 ‘폭풍우’는 수업 시간에 다루지 않았다. 교수의 질문은 ‘폭풍우’가 비극인가 희극인가였다. 그 질문은 한 학기의 수업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었으며, 스스로 결론을 만들어 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수업시간에 한 번도 비극과 희극에 관한 정의를 논하지 않았다. 단지 비극과 희극 작품을 읽었을 뿐이다. 다양한 문학 강의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의 한국 상황을 내가 경험하고 유학을 갔더라면 그때처럼 황홀해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 이 황홀한 순간을 학생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내 길을 찾아 떠났던 미국 유학. 나는 길을 찾은 셈이었다. 귀국 길에 오랫동안 알고 지낸 로스앤젤레스의 미국인 할머니를 방문했다. 할머니는 “왜 한국으로 돌아가려는가”라고 질문했다. 나는 답했다. “내가 배운 새로운 문학 방법과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그런데 그 소리는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음성이었다.

김재인 성신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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