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가로수길의 변화 바람, 진화냐 퇴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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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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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산업부 기자
김현진 산업부 기자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선 상전벽해 같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올해 2월과 3월 사이에 패션브랜드 자라는 커피빈 자리에, 에잇세컨즈는 네스카페 자리에 새로 매장을 연다. 스파이시컬러는 분식점 스쿨푸드가 있던 곳에, 라코스테는 커피숍 겸 꽃집인 블룸앤구떼 자리에 들어온다. 식음료 매장이 있던 자리에 대형 패션 브랜드들이 들어서는 것이다.

▶본보 21일자 2면 글로벌 패션기업의 ‘안테나 스트리트’ 된…


올봄 이곳에 매장을 여는 한 패션업체 관계자는 “가로수길이 일본의 하라주쿠나 뉴욕의 블리커스트리트가 겪었던 발달 단계를 똑같이 밟고 있다”고 말했다. 갤러리들이 모인 거리에 △맛집이 생겨나 입소문이 나고 △대중적인 커피숍이 증가한 뒤 △제조·유통 일괄형 의류(SPA) 브랜드의 대형 매장이 들어서는 순서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자본을 내세운 국내외 패션 브랜드가 가로수길을 하나 둘 점령해 나가면서 기존 세입자와 건물주 사이의 갈등도 종종 벌어진다. 수요가 늘면서 최근 2년 새 임대료가 5∼10배 상승하자 건물 주인들이 자본력을 갖춘 브랜드를 들이려 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가로수길이라는 개성 있는 거리를 만든 것은 작은 패션숍과 식당을 운영해 온 기존 세입자들”이라며 “몇 년 새 크게 늘어난 권리금을 챙길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라고 말했다.

가로수길은 원래 ‘소박한 DNA’를 간직한 거리였다. 화랑(畵廊)거리로 불리던 곳에 1995년경부터 젊은 디자이너들이 운영하는 숍들이 들어서면서 특유의 개성이 꽃피게 됐다. 일부 디자이너는 이곳에서 기본기를 다진 뒤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기자가 2001년 이 거리를 취재하면서 만난 디자이너 정욱준 씨가 지난해 프랑스 고급 브랜드 ‘니나리치’의 국내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게 좋은 예다.

이제 가로수길은 젊은 디자이너들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기엔 ‘몸값’이 너무 비싸졌다. 명동처럼 덩치만 크고 개성은 없는 거리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로수길이 글로벌 자본이 눈여겨보는 뜨거운 상권이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상권 자체가 개성을 잃고 있다는 점은 장기적으로 리스크가 될 수 있다.

2012년 가로수길에서 진행 중인 상전벽해는 진화일까, 퇴보일까.

김현진 산업부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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