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종훈]중동에서 만난 ‘우리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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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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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파리 특파원
이종훈 파리 특파원
그의 이름은 아예드였다. 나이는 45세. 기자와 비슷한 나이지만 외모는 한 열 살 정도는 많아 보였다. 찌든 얼굴과 거친 손에서 고생의 흔적이 뚜렷했다. 10월 하순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한 리비아의 국경으로 가기 위해 튀니지의 제르바 공항에서 만난 택시 기사 아예드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친구 한 명과 택시 한 대를 갖고 24시간 교대로 일을 하는 아예드는 19세에 결혼해 4명의 자식을 둔 아버지였다. “파리에서 온 한국인 기자”라는 말에 그는 순식간에 얼굴이 밝아지며 “내 큰딸이 파리에서 박사 과정 유학 중”이라고 말했다. 둘째 아들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통신회사에서 일한다고 했다. “택시 운전하면서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자식들을 유학까지 보냈느냐”고 묻자 아예드는 “명석했던 딸이 프랑스에서 공부하길 원했다”고 말했다. 또 “택시 운전을 하며 모은 돈은 거의 전부 아이들 교육에 들어간다. 먹고사는 게 넉넉지 않지만 자식 교육을 열심히 시키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둘째 아들도 돈을 모아 유학을 가려고 해서 그때 도와주려고 열심히 택시를 운전한다고 했다.

그는 남북한 지도자의 이름은 물론 경제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통일에 중국이 큰 장애물이라는 게 맞느냐고 물어볼 만큼 박식했다. 기자가 감탄을 금치 못하며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묻자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루에 신문 4개를 국제 소식까지 정독한다. 하지만 깊은 지식은 없다”고 겸손해했다. 리비아 국경에서 내리며 아예드에게 “한국의 발전도 부모의 교육열에서 시작됐다. 당신 같은 아버지들이 있는 한 튀니지는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라고 말해줬다. 진심이었다.

국경에서 2시간 동안 입국 절차를 마치고 트리폴리로 가는 택시를 잡았다. 이번에 만난 기사의 이름은 아마르(55). 그는 자식이 5명이라고 했다. 3명은 대학 졸업 후 이미 결혼해 잘살고 있고 나머지 두 명은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아마르는 매일 도시를 오가며 택시,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한다고 했다. 한국산 중고차를 운전하는 아마르는 “우리도 한국처럼 잘살게 됐으면 좋겠다”며 “지금 대학을 다니는 자식은 영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해 힘이 닿는 대로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부인도 돈을 벌기 위해 시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민주화 혁명을 겪은 두 나라에서 두 명의 열혈가장을 만나자 1960, 70년대 군사독재 시절, 오로지 자식 교육에 모든 걸 바쳤던 우리의 부모들이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 위로 지난해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의 서울 특파원이 쓴 ‘어글리 코리안, 내가 본 그 위대한 세대’라는 칼럼이 겹쳐졌다. 15년 전 공항에서 필자가 처음 보았던 시끄럽고 촌스럽고 매너까지 형편없던 50, 60대의 ‘어글리 코리안’, 지금은 70, 80대가 된 어글리 코리안이 실은 6·25전쟁의 폐허 위에서 청춘을 포기한 채 땀과 눈물을 흘려가며 자식을 키워 대한민국을 ‘제로’에서 ‘영웅’으로 만들어낸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대라는 게 칼럼의 요지였다. 잘 차려입고 젊은 나이에 해외 경험을 해 세련된 매너와 외국어 실력을 자랑하는 요즘 한국의 청년 세대는 위대한 어글리 코리안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엔 실체가 없는, 고마운 우리 부모 세대의 삶을 기자는 이역만리에 사는 아예드와 아마르에게서 발견했다. 그들은 ‘아랍의 봄’이라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며 독재를 무너뜨린 주역이었고, 자식의 교육과 행복을 위해 모든 걸 던진 아름답고 위대한 아버지였다. 우리의 아버지들도 그랬을 것이다.

이종훈 파리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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