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의 새벽편지]모든 벽은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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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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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정호승 시인
영화 ‘해리포터’를 떠올리면 결코 잊지 못할 장면이 하나 있다. 열한 살 고아 소년 해리가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런던 킹스크로스역 벽을 뚫고 들어가던 장면이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차단된 벽 속으로 해리가 성큼 발을 내딛고 들어서자 벽 속에는 마법학교로 가는 특급열차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승강장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장면이 펼쳐졌다. 나로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것은 벽이 문이 되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모든 벽 속에는 문이 존재해 있다는 사실을 분명 알게 되었다. 벽은 항상 굳게 막혀 이곳과 저곳을 차단함으로써 그 존재 가치를 지니는 것인데, 그 안에 또 다른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내 인생의 벽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게 해주었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만 해도 ‘해리포터 시리즈’는 인생의 벽 앞에서 작가 자신이 연 용기의 문이었다. 이혼 후 어린 딸을 데리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인생의 벽 앞에 서 있었지만 그녀는 해리포터를 씀으로써 벽을 문으로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인생의 벽 앞에서 돌아서는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벽을 문으로 만들려고 노력한 적은 있었다. 내 인생의 꿈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어서, 내 인생이라는 시간을 내가 주인이 되어 오로지 시를 쓰는 일에 사용하게 되는 것이어서 잘 다니던 직장을 두 번이나 스스로 그만둔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늘 생계라는 벽에 가로막혀 번번이 되돌아서곤 했다. 좀처럼 그 벽을 뚫고 나갈 용기가 없었다. 그렇지만 마흔한 살 되던 해에 사라져가는 그 꿈을 찾고 싶어 친지들 모두가 한사코 말리는데도 직장을 그만두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그나마 벽을 뚫고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왔기 때문에 보다 자유스러운 삶을 살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독수리는 뼈를 깎는 고통 이기고 새삶

조류 중에서는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가 삶의 벽 앞에서 문을 여는 존재다. 독수리의 평균 수명이 인간과 비슷한 까닭은 늙음과 죽음의 벽 앞에서 독수리가 스스로 새로운 삶의 문을 열기 때문이다. 독수리는 30년 좀 넘게 살게 되면 무뎌진 부리가 자라 목을 찌르고 날개의 깃털이 무거워져 날지 못한다. 날카롭게 자란 발톱마저 살 속을 파고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때 독수리는 본능적으로 이대로 죽을 것인가, 아니면 뼈를 깎는 고통의 과정을 밟아 새롭게 태어날 것인가 선택하게 된다. 만일 새 삶을 선택하면 6개월 정도 그 과정을 견뎌내야 한다. 높은 산정에 둥지를 틀고 암벽에 수도 없이 부리를 쳐 깨뜨리는 아픔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새 부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부리가 나면 발톱을 모두 뽑아내고 새 발톱이 자랄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 그러고는 그 새 부리로 낡은 날개의 깃털도 뽑아내고 새 깃털이 자라 날갯짓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의 과정이 아닐 수 없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때 독수리의 몸은 피범벅이 된다. 그런데도 독수리는 그 고통의 벽 앞에서 자신을 전부 새롭게 갈고 새 삶의 문을 연다. 만일 독수리가 벽 속에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면 결코 인간과 같은 수명을 누리는 새 삶을 살지 못한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벽 앞에서 내일이라는 새로운 삶을 위해 독수리처럼 선택과 결단의 문을 열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반드시 독수리와 같은 고통과 인내의 과정이 필요하다. 2007년에 말기암으로 6개월 시한부 삶을 살면서도 ‘마지막 강연’이라는 동영상을 통해 전 세계인에게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던진 미국의 랜디 포시 교수는 인생의 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벽이 있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벽은 우리가 무언가를 얼마나 진정으로 원하는지 가르쳐준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 앞에 멈춰서라는 뜻으로 벽이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인생의 벽을 절망의 벽으로만 생각하면 그 벽 속에 있는 희망의 문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말이다.

갈등의 벽 허물고 희망의 문 열어야

벽을 벽으로만 보면 문은 보이지 않는다. 가능한 일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결국 벽이 보이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고 보면 결국 문이 보인다. 벽 속에 있는 문을 보는 눈만 있으면 누구의 벽이든 문이 될 수 있다. 그 문이 굳이 클 필요는 없다. 좁은 문이라도 열고 나가기만 하면 화합과 희망의 세상은 넓다. 그러나 마음속에 작은 문을 하나 지니고 있어도 그 문을 굳게 닫고 벽으로 사용하면 이미 문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를 둘러보아도 사방이 벽이다. 이념 간, 세대 간, 계층 간의 벽이 견고하다. 어떤 때는 높디높은 성벽에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느껴져 숨이 막힌다. 그러나 그 어떤 성벽이라도 문은 있다. 문 없는 벽은 없다. 모든 벽은 문이다. 벽은 문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벽 없이 문은 존재할 수 없다.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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