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의 새벽편지]자살의 유혹에 침을 뱉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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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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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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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자살사회’다. 어린 학생에서부터 연예인, 대학 총장, 시장, 도지사,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자살하는 사회다. 우리 사회에서 자살은 이미 치유하기 힘든 질병이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부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하면 곧이어 관계자가 자살했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사건 발생과 자살이 걸핏하면 하나의 연결고리를 이룬다. 굳이 하나하나 예로 들 필요가 없을 정도지만 얼마 전에는 저축은행장이 투신자살했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꽉 막힌 듯 먹먹해진다. 남의 일 같지 않고 마치 ‘오늘도 내가 자살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그들의 자살을 통해 내 생명의 무게나 가치조차 가볍고 무가치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결코 그럴 리 없겠지만 어떤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지면 나도 그들처럼 자살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자신의 삶의 고통을 언론에 이야기할 땐 심사숙고해야 한다. “한때는 자살할 생각을 많이 했다. 독극물을 주사할까, 목을 맬까, 약을 먹을까, 구체적으로 계획한 적도 있었다”라고 할 때는 그 말을 듣는 일반 대중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삶이 그만큼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은연중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향해 “저런 사람도 자살하려고 했는데…” 하는 생각을 바이러스처럼 널리 퍼지게 만든다.

나는 9년 전 수능 1교시 언어영역 시험을 치르고 고사장을 빠져나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남원의 한 여고생에 관한 보도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수능시험을 좀 못 치렀다면 그것이 목숨마저 버릴 만한 일이었을까. 남은 가족, 그중에서도 딸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자살은 자신에 대한 가혹한 범죄행위

가족 중에 자살한 이가 있으면 그것은 남은 가족이 평생 안고 가야 할 고통의 짐이다. 내가 아는 분 중 아버지가 자살한 가족은 명절날 형제끼리 만나도 서로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영원히 아물지 않는, 가슴속에 날카로운 돌부리처럼 박혀 있는 그 고통의 상처를 아무도 먼저 건드리고 싶지 않는 것이다. 만약 아버지의 죽음이 자연적인 것이었다면 그들은 항상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했을 것이고,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와의 이별의 고통이 사랑과 그리움으로 승화되었을 것이다.

최근 신문보도에 의하면 한강에 투신하는 이가 이틀에 한 명꼴이고 하루 평균 43명이 자살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자살사회’라 할지라도 이대로 방관할 일은 아니다. 언젠가 한강에 투신했다가 구조대원의 도움으로 살아난 이가 자신의 자살 경험을 적은 노트를 한강대교 난간에 매달아 놓은 적이 있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꼭 읽어주세요’라고 쓰인 그 노트엔 ‘차가운 물속에서 숨이 끊어질 때까지 받는 고통의 시간이 살아서 고통 받는 시간보다 수천 배 수만 배 더 길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람은 희망을 잃을 때 자살한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큰 죄악은 바로 희망을 잃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살은 죄악이다. 절망이라는 죄는 신이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인생의 성공 중에서 자살에 성공한 것만큼 부끄러운 성공은 없다. 타인을 죽여야만 살인이 아니라 자신을 죽여도 살인이다. 자살은 살인에 속하며 자신에 대한 가장 가혹한 범죄행위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정말 죽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움을 겪는다. 어려움을 겪지 않고 인생을 마치는 이는 없다. 그런데 어려울 때마다 자살을 생각하고 또 자살한다면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되겠는가. 오늘도 지하철 사당역에서 한 할머니가 떡바구니를 앞에 놓고 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데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 얼마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장엄한 광경인가. 지하철을 오가며 하모니카를 불거나 육성으로 노래를 부르며 구걸하는 시각장애인들을 보라. 이 얼마나 숭고한 생존의 풍경인가.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그의 환갑 기념 심포지엄에서 “내가 이룬 업적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통영의 딸’ 신숙자 씨 남편 오길남 씨가 북에 두고 온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책은 지금 그가 살아 있는 것이다. 만일 오길남 씨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이라도 한다면 북에 있는 그의 가족 또한 죽은 존재나 마찬가지다. 너무나 죄송스러운 가정이지만, 만일 법정 스님이나 김수환 추기경께서 자살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삶은 그 얼마나 고통스럽고 허망할 것인가.

힘들다고 죽는다면 얼마나 허망한가

자살은 유행이 아니다. 재산과 명예를 지키는 일도 아니다. 자살은 자살일 뿐이다. 자살하면 어려움에 처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이한 이기적 생각이다. 죽어서 해결될 문제는 살아서도 해결된다. ‘자살하지 마라/다시 태어날 줄 아나’라고 최명란 시인이 노래했듯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어렵다. 만일 오늘 당신이 자살의 유혹에 빠진다면 자살의 유혹에 침을 뱉어라.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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