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의 東京小考]9·11테러 10년을 맞은 소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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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뉴욕으로의 전화선이 먹통이 돼 연결할 수 없습니다”라는 영어 음성메시지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2001년 9월 11일. 당시 워싱턴에 머물고 있던 나는 오전 9시경 전날 접촉사고로 부서진 자동차 수리를 문의하려고 뉴욕에 있는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웬일일까 이상한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설마 이 회사가 입주한 ‘세계 제1의 건물’이 붕괴됐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때는 2번째 비행기가 월드트레이드센터에 부딪힌 직후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당시 나는 신문기자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모 연구소에서 연구 중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예외였다. 아사히신문 주미 총국으로 급하게 달려가 후배 특파원들의 업무를 지원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날 이후 미국은 거리마다 성조기가 나부꼈고, TV에서는 ‘갓 블레스 아메리카(God Bless America·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라는 노래가 연일 흘러나왔다. 이 나라는 애국주의 물결에 휩쓸려갔고, 프랑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가장 먼저 미국을 찾은 데 이어 세계 곳곳에서 동정의 손길이 이어졌다. 워싱턴에 사는 일본인 수백 명은 돈을 모아 신문 전면광고를 내기도 했다. 당시 광고의 제목은 “미국이여, 우리가 함께 있습니다”. 참사를 겪은 미국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겠다는 연대감의 표시였다. ‘진주만 공격 이래 첫 기습’이라는 말에 일본인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美, 10년간 싸움에 잃은 것 많아

그로부터 10년. 올해 5월 테러 주모자였던 오사마 빈라덴이 미군에 사살됐다. 하지만 현재 미국에서는 승리했다는 기쁨을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은 세계 각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행한 이라크전쟁에서 실패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벌인 아프가니스탄전쟁까지 교착상태에 빠졌다. 두 나라에서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했고 미군 전사자도 6000명에 이르렀다.

전쟁비용도 엄청나다. 해마다 군사비는 거의 두 배로 늘어 미국 재정을 압박했다. 리먼 브러더스 파탄을 부른 주택버블의 붕괴는 힘겨운 전쟁 와중에도 허세를 부리며 무리하게 경제정책을 밀어붙인 결과였다. 대기업 구제와 대규모 감세로 재정적자는 급격히 불어났고, 급기야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의 미 국채 신용등급 강등으로 올여름 최고 신용등급 자리에서 밀려났다.

지구를 뒤덮은 테러의 위협은 10년간의 싸움으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 대가로 미국이 잃어버린 것은 헤아릴 수 없다.

첫 번째로 ‘세계의 보안관’이라는 위신이다.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무력행사도 불사한다는 네오콘의 사상이 조지 W 부시 정권에 큰 영향을 줬지만 이제는 미국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다. 프랑스와 독일의 맹렬한 반대로 무너진 국제 연대의 기운을 회복하는 데는 오바마 정권이 등장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로 ‘일극 지배’라는 군사적 지위다. 냉전의 붕괴로 소련이라는 강적이 사라졌지만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에 쩔쩔맸다. 이라크 공격은 북한의 핵개발을 부추기는 부작용까지 낳았지만 미국은 달리 손 쓸 방도가 없었다. 동아시아에서 점점 커져가는 중국의 해군력도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세 번째로 세계 으뜸의 경제국 리더로서의 지위다. 버블 붕괴로 미국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세계경제 위기를 타개할 힘을 잃었다. 발행량이 급증하는 국채는 중국의 도움 없이는 소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얄궂은 일은 미국의 위신 저하와 동시에 중동에서 ‘아랍의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튀니지에서는 재스민 혁명이 일어났고 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 체제가 붕괴됐다. 이는 ‘네오콘적인’ 미국의 개입이 아니라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매개로 한 민중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 이런 시대가 올 줄 알았다면 이라크에도 트위터가 등장하기를 기다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부시 전 대통령은 아마 지금쯤 몹시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이라크전쟁을 지지해 부시 전 대통령을 기쁘게 하긴 했어도, 당시 많은 일본 사람은 폭주하는 미국에 단순히 ‘미국과 함께’라고 말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일본보다 적극적으로 이라크에 파병까지 한 한국은 더 복잡한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한미일 연대 방해세력 경계해야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으로 미국도 변했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미국은 서로 의지해야 할 중요한 동맹국임에 틀림없다. 거대화하고 있는 중국, 이상해져만 가고 있는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일한 양국은 서로 협력하면서 동시에 미국과 연대해갈 수밖에 없다.

지금도 뭔가 삐걱대고 있는 일한 관계지만, 사소한 분쟁을 일부러 부풀려 양국간 균열을 주변국에 노출시키는 것만큼 비전략적인 처사도 없다. 9·11 이후 10년, 미국에 필요한 반성과는 별도로 일한 양국이 경계해야 할 것이 그것이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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