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생큐! 리눅스 20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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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는 저작권이 없습니다. 상표만 베끼지 않으면 디자인은 똑같이 흉내 내도 됩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수백만 원짜리 샤넬 핸드백이 아니라도 샤넬 제품처럼 보이는 멋진 디자인의 핸드백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산업에서는 꿈도 못 꿀 일입니다. 모방과 표절은 저작권법 위반이 되고, 신제품을 만들 때 경쟁업체의 등록 특허와 비슷한 기술이 쓰이면 바로 특허 침해가 됩니다. 그 결과 최신 유행의 값싸고 멋진 옷은 거리에도 넘쳐나지만 생명을 구하는 치료약은 특허에 갇혀 값도 비싸고 충분히 생산되지 못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물론 지적재산은 보호돼야 합니다. 마크 제이컵스의 패션이 적어도 같은 상표는 쓸 수 없도록 상표권으로 보호받지 않았다면 우리는 루이뷔통의 프레타포르테(기성복)도 볼 수 없었을 테니까요. 압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20년 전의 일입니다. 1991년 핀란드 헬싱키대의 리누스 토발즈라는 학생은 훗날 ‘리눅스 커널’로 불리게 되는 운영체제(OS)의 핵심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시작은 별것 아니었습니다. OS의 값이 너무 비싸 “이럴 바엔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게 계기였으니까요. 하지만 일단 완성된 리눅스 커널은 그 뒤의 세상을 급격하게 바꿔 놓았습니다.

커널은 컴퓨터라는 기계장치와 최종 사용자가 사용하는 응용프로그램 사이를 연결해주는 중간 다리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OS는 OS 그 자체가 아닌 그 껍데기에 불과한 사용자환경(UI)일 뿐입니다. 실제 컴퓨터를 제어하고 지시하는 건 커널의 역할입니다.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가 토발즈에 의해 무료로 만들어져 공개된 겁니다. 물론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비싼 OS에 불만이던 전 세계의 프로그래머들이 토발즈를 도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리눅스의 UI를 윈도처럼 만들어 초보자도 쉽게 배울 수 있게 한 ‘우분투’ 같은 OS를 만듭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도 대부분 OS로 리눅스를 씁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OS도 리눅스가 바탕이 됐습니다. 하지만 구글은 이런 안드로이드 OS를 만들면서 특허 침해 혐의로 애플, 오러클, MS 등으로부터 제소를 당합니다. 구글은 이 과정에서 “특허가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리눅스를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MS가 윈도 OS를 이용해 서버 OS 시장에서 거둔 매출은 약 238억 달러(약 25조 원)에 이릅니다. 하지만 서버 OS의 사용 점유율로는 리눅스가 71%로 마이크로소프트(16%)보다 4배 이상 많습니다. 바꿔 말하면 리눅스가 그만큼 간접적인 비용절감 효과로 인터넷 전체를 살찌우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무료로 공개하면 모두가 이익을 보지만, 이를 유료로 가둬두면 한 기업만 이익을 봅니다.

리눅스는 이른바 ‘공개소프트웨어’입니다. 해리 포터에 비유하자면 저작권자인 조앤 롤링이 해리 포터에 대해 “누구나 고쳐 쓰고, 고쳐 쓴 소설을 팔아도 된다”고 선언한 뒤 “다만 누구도 자신이 고쳐 쓴 해리 포터를 남이 또 고쳐 쓰는 걸 막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단 셈입니다. 리눅스의 이런 정신 덕분에 지난 20년 동안 인터넷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고 스마트폰 시대도 열렸습니다. 고맙습니다, 리눅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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