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한국의 애플은 ‘영혼없는 상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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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동안 애플이라는 기업을 취재하면서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좀 정신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네 편, 내 편’ 싸움 탓입니다. 2009년 11월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에서 판매될 때 벤처투자자, 전자업체 임원, 통신사 임원 등이 제게 들려준 얘기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아이폰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를 썼습니다. 그랬더니 저를 ‘삼성전자 편’ ‘국수주의자’라고 비난하는 e메일이 쏟아졌습니다.

지난해 1월 처음 나온 아이패드를 “전기밥솥처럼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컴퓨터”라고 칭찬하자 반대로 ‘애플 편’으로 비난받았습니다. 올해 4월 아이폰에 사용자의 10개월 치 위치정보가 허술하게 저장돼 있다는 보도 뒤에는 다시 ‘삼성전자 편’이 돼 있었죠. 최근에는 아이폰 관련 집단소송이 저를 또 ‘애플 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100만 원의 위자료를 받아낸 뒤 집단소송을 추진하는 김형석 변호사와 관련된 일 말입니다.

저는 다른 측면을 지적했습니다. 집단소송을 하려면 참가자들이 비용을 분담해야 하는데 김 변호사는 1인당 1만6900원을 요구했습니다. 이 가운데 9000원이 수임료죠. 이미 3만 명 이상이 참여했으니 김 변호사는 벌써 2억7000만 원 이상을 벌어들인 셈입니다.

김 변호사는 처음 애플코리아로부터 위자료를 받아냈을 때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소송이 아닌 ‘지급명령’을 신청했습니다. 소송에서 이긴 것처럼 보도돼 사람들이 집단소송에 대거 참여했지만 지급명령은 소송이 아닌 약식절차라 법원은 사실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허탈했죠. 많은 분들이 ‘나도 김 변호사처럼 100만 원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기대했지만 결론은 소송을 해봐야 안다는 것뿐입니다.

제가 이런 사실을 보도했더니 일부 언론은 “거대기업 애플에 대한 패배의식”이라고 주장하더군요.

도대체 왜 이런 네 편 내 편 다툼이 벌어지는 걸까요.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로 손꼽히는데 말입니다. 전 애플이 해외에서는 ‘뛰어난 제품’과 ‘소비자 경험’을 함께 팔지만 한국에서는 그저 제품만 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애플은 ‘애플스토어’라는 직영 매장으로 유명합니다. 애플스토어는 미국 뉴욕의 패션중심가인 5번가나 일본 도쿄의 긴자,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앞, 중국 상하이의 둥팡밍주 건너편 등에 있습니다. 이런 호화로운 애플스토어에 들어가면 파란 옷을 입은 정직원들이 소비자의 작은 불편 하나하나를 들어주며 각종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반면에 한국의 ‘애플 공인 판매점’에 들어가면 아르바이트 직원이 제품이 망가졌다는 고객에게 “애프터서비스는 다른 곳에서 받으라”며 돌려보냅니다.

해외에서 애플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지만 한국에서 애플은 ‘영혼 없는 상품’입니다. 그리고 영혼 없는 상품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는 국내 소비자는 늘어만 갑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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