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기자의 퀵 어시스트]“뉴델리의 영광 다시 한 번” 칠순 앞둔 방열 前감독의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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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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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라” 절박한 외침 함성으로. 30초 남기고 반 골 차.

1982년 12월 4일자 본보에는 이런 제목으로 뜨거웠던 현장 분위기를 전달했다. 한국 남자 농구가 뉴델리 아시아경기에서 신선우 이충희 등의 활약으로 중국을 1점 차로 꺾고 7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땄다는 보도였다. 당시 한국은 중국에 8년 동안 6연패에 빠져 있을 정도로 실력차가 컸다. 그런 중국을 제압한 데는 방열 대표팀 감독(사진)의 지략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철저한 지연작전을 펼쳤다. 30초 공격 제한 시간 중 25초 이후에야 공격에 들어갔다. 수비에서도 최대한 상대 공격을 늦추도록 유도했다.

골리앗을 꺾은 다윗으로 불린 그는 지도자와 대학 교수 등을 거친 뒤 1일 경북 안동의 건동대 총장에 부임했다. 농구인 출신 최초 대학 총장으로 바쁜 일정을 쪼개 지난 주말 태릉선수촌을 찾았다. 광저우 아시아경기 남자 농구 대표팀의 연습경기를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40대 초반 한국 농구를 아시아 최강으로 이끌었던 방 총장은 어느새 고희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도 아시아경기를 앞두고 남다른 감회에 젖어들 때가 많다. 유재학 대표팀 감독은 방 총장이 실업팀 기아에서 지휘봉을 잡았을 때 아끼던 제자였다.

방 총장은 손자뻘 되는 선수들에게 무엇보다 매너와 희생정신, 팀워크를 강조했다. 유 감독에게는 따로 쪽지까지 건네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의 텃세가 예상되는 만큼 편파 판정에 냉정을 잃지 말아야 된다고 주문했다.

대표팀은 전폭적인 지원 속에 그 어느 때보다 대회 준비에 공을 들였다. 10일 출국한 대표팀이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농구 위상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뉴델리 영광 이후 1983년 출범한 농구대잔치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선배들보다 체격과 환경은 월등히 좋아졌어도 근성은 그렇지 못해요. 뭔가 달라져야 할 텐데….” 백발이 성성한 방 총장의 농구 열정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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