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김용희]한국 대학생의 여름방학 탐구생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나, 종강했다! 내 친구들은 이 말을 제일 싫어한다. 하긴 더운 여름에 누구는 방학이랍시고 집에서 쉬고 누구는 매일 회사에 나가 ‘삽질’하니 뭔가 울컥 올라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교수라고 방학 때 놀지만은 않는다. 할 일은 많고 세상은 넓다. 이번 방학 연수도 또 중국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한국 대학생이 해외연수를 가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부터다. 서울 올림픽 이후 세계화 바람이 불었다. 유럽 배낭여행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여름 캠프와 해외연수 등 많은 프로그램이 대학생을 기다린다. 타문화와 타언어권을 경험하고 학습하는 기회라는 타이틀 하에.

대학생은 글로벌 무대에서 다양한 체험과 폭넓은 시각을 체득한다. 그러나 최근 대학생 방학생활에 또 다른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일명 ‘명품 몸 만들기’ 프로젝트. 방학을 이용해 가슴 수술을 하고 식스팩 복근과 S라인을 만들고 피부 관리를 받는 미용, 건강프로젝트이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는 농활을 가고 산에 가 버너로 밥을 해먹었다.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한국 대학생이 다 명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우리 학과에 ‘황 박사’로 불리는 학생이 날 찾아왔다. 그는 정말 무엇을 전공하는 박사처럼 희끗희끗한 새치에 안색이 불그레하다. 아무리 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해도 20대 중반치곤 삭은 얼굴이라 나는 그를 볼 때마다 삼촌을 보는 듯해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하지만 입만 열었다 하면 동서양 고전에 대한 열변을 늘어놓았다. 해서 그는 텔레비전 토론프로에 나오는 어떤 박사보다 더 박사처럼 보였다.

해외 연수와 ‘등짐 장학금’ 사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학과 일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그 다음으로 방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학 때 뭘 할 거니?” 교수가 학생에게 으레 하는 상투적 질문 중 하나였다. 그가 할머니 손에 자랐으며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자신이 벌어서 산다는 정도는 전에 알았다. 그는 군대 월급을 다 저금해 200만 원을 만들었고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월세에서 전세 원룸으로 집을 옮겼다고 했다. 늘 성적 장학금을 탔지만 장학금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단다. 거제도에 내려가 막일을 하면 한 학기 등록금은 거뜬히 벌 수 있다고. 장학금이 나오면 서울에서 아르바이트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하긴 내가 아는 대학생은 방학이 되면 한국에서 가장 값싼 노동력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했다. 방학은 대학생 아르바이트 특수이다. 88만 원 세대의 저자는 토익책을 던지고 청년에게 짱돌을 들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대학생은 짱돌을 드는 대신 짱돌을 등에 지고 나르는 공사판 아르바이트생이 된다. 24시간 편의점에서,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호프집에서,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는 계속된다.

대학도서관 대출 1순위가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이지만 지금 대학생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1970년대 말 소설 속 주인공은 낭만적 방황을 계속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하지만 2010년 오늘의 대학생에게 청춘의 방황이란 사치스러운 단어가 되었다. 방황을 하기엔 현실은 가혹할 뿐이다. 아비 세대가 자식 세대 때문에 직장에서 퇴출되는 시대, 혹은 아비 세대가 자식 세대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르바이트생은 월드컵 현장에도 있다. 광장에 붉은 티를 입고서 나타난다. 광장에 응원을 위해 온 연인 혹은 가족 무리 앞에. 오토바이를 타고 치킨 배달을 위해 나타난다. 월드컵 덕택에 광장 근처 치킨집과 피자집 매상이 늘어났다고 한다. 평소에 비해 30배나 늘어난 곳도 있다. 날개 돋친 듯 치킨이 팔리자 아르바이트생이 날개 돋친 듯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대∼한, 민, 국”을 외치며 닭다리를 뜯는 대학생과 배달원 아르바이트생은 광장에서 만난다. 월드컵 응원현장에서 행복하게(?) 조우한다. 우리가 호프집에서 월드컵 경기를 보며 환호할 때도 아르바이트생은 있다. 500cc 호프를 나르면서 치킨을 배달하면서.

그래도 팔팔한 88만원 세대여

여름방학이 되면 한국은 디아스포라의 현장이다. 해외로 나가는 어학 연수생, 귀국한 해외 유학생, 몸짱 프로젝트 참가자, 어학 학원 수강생, 생계형 아르바이트생. 글로벌 시대 대학생은 더 신속하게 서열화되고 있다. 부의 세습은 훨씬 더 결정적인 현상이 되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 프로젝트가 단순히 가상의 허구일까. 산업시스템을 탓하기에 한국은 너무 멀리 와 버렸을까.

나는 등록금을 위해 더운 여름 아르바이트 현장에 가 있는 대학생을 생각한다. 그들이 생존을 위해 너무 빨리 너무 쉽게 ‘굴욕’이나 ‘분노’ 따위를 세상에서 배워버릴까 걱정이 된다. 너무 빨리 포기를 배워버릴까 걱정이 된다. 여전히 세상은 가능성이 넘쳐나고 재미나고 흥미로운 곳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작위적 위로가 될지라도 이런 말도 덧붙이고 싶다. 꿈이 있는 자는 미래를 가진 자라고.

김용희 평택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