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칼럼]전교조의 정체성 문제

  • Array
  • 입력 2010년 6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천안함 사건과 지방선거라는 뉴스 블랙홀에 묻혀 관심의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지만 결코 소홀히 넘겨서는 안 될 문제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전교조 가입교사 명단 공개를 둘러싸고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과 법원 사이에서 벌어진 공방이다. 불법으로 판결 받은 명단 공개를 철회하지 않는 한 하루에 3000만 원씩을 전교조에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철퇴에 맞아 용감하게 싸움은 시작했으나 돈이 없는 조 의원은 일단 백기를 들었지만 그가 제기한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6·2지방선거에서도 전교조의 지지를 받는 후보들이 교육감이나 교육의원으로 대거 당선된 사실을 보고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 전교조가 발휘하는 영향력은 앞으로도 계속 증폭될 것임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그러한 엄청난 힘을 가진 조직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정체가 누구인가를 알 국민의 권리는 계속 부정되어도 괜찮은가.

이는 전교조의 입장을 지지하는가 않는가를 떠나서 사회공익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모든 비정부 비영리 조직의 관리에 적용되는 이야기다. 투서를 해도 실명이 아니면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시민의 권익이 음성적 반사회적 행위로 침해받는 현상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관행이다. 그런데 어린 학생 개개인의 장래는 물론 나라의 백년대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단체의 인적 구성이 어떠한가에 대한 알 권리를 우리 국민은 사생활 보호라는 미명 아래 부정당하고 있다.

선거도 흔드는 조직원은 베일 속

전교조 명단공개 금지 판결에서 법원이 내세운 근거는 ‘교육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이고 공개 내용이 ‘학생 및 교원의 개인정보를 포함해서는 아니된다’는 3조 2항이다. 이 특례법의 전체적 취지는 교육에 관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교육당국이 반드시 공개해야 할 사항을 명시한 데 있다. 그 과정에서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사생활 침해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삽입해 놓은 내용이 3조 2항이다. 그런데 판사는 마치 법의 주안점이 교육에 관한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니라 사생활 보호에 있는 듯 곡해하며 특히 노조 가입 여부는 일반 정보보다도, 교육에 관해 국민의 알 권리보다도 높은 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상위가치라고 유권해석을 했다.

교육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교육위원으로 있는 국회의원이 백방의 노력을 하는 것은 책임 있고 용기 있는 행위이다. 만약에 법 자체가 잘못되어 아이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있는가에 관해 학부모가 알고 관여할 권리가 없어진다면 바로잡을 의무를 가진 사람이 바로 국회의원이다. 그러나 지금은 법에 앞서 던져야 할 중대한 도의적 질문이 있다. 참교육을 주창하며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는 왜 자기들의 전교조원 신분이 국민 앞에 노출되기를 그리도 두려워하는가?

권위주의 정부시절에는 노조 가입 사실의 노출 자체가 차별과 탄압의 실마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노조의 영향력이 집행부나 정부의 힘을 능가할 정도로 강해진 오늘날 그런 부작용을 두려워할 근거는 없다. 그런데도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교원노조 가입 여부를 비밀에 부쳐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거기에는 말 못할 무슨 다른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여지가 없지 않다.

교육에서 핵심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은 교사이고 교사도 다른 직능인이나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조합에 소속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 내 소신이었다. 교육 당국의 관료주의적 타성과 무책임에 오래전부터 실망을 했기 때문에 나는 전교조 출범을 지지했었다.

그 후 20년 사이 전교조가 수행해온 역할을 보면 보통 사람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기대했던 참교육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편향된 정치교육이라는 것이 내가 내린 불행한 결론이다. 예를 들어 통일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주입되는 조직적 반미교육은 우리 현대사를 부정 일변도로 해석하는 북한의 입장과 너무도 가깝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무엇이 두렵고 뭘 감추고 싶은가

우리는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또 보수나 진보의 입장 차이는 항시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기 정체를 밝히기를 거부하는 세력이 단체적으로 교육정책과 내용을 좌지우지하는 일을 방치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정치체제는 이 세상에 존속할 수가 없다. 이는 비단 교육 관련 단체나 좌편향 조직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고 모든 공익단체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들은 이제 스스로의 입장을 점검하고 당당하게 자기의 정체를 밝히고 나와야 한다.

이인호 KAIST 김보정 석좌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