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윤종구]스모, 日전통과 국제화의 어울림

  • Array
  • 입력 2010년 1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본 국기(國技)인 스모(相撲)의 올해 첫 경기가 10일 시작됐다. 스모를 보고 있노라면 재미보다는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한때 온 국민의 인기를 누리며 수많은 스타선수를 낳았던 우리 씨름의 쓸쓸한 모습과 대비돼서다.

스모에는 일본 전통이 그대로 묻어 있다. 경기 시작 전에는 모든 선수가 특유의 전통의상 차림으로 지름 4.55m의 도효(土俵)를 한 바퀴 도는 세리머니를 한다. 최고 등급인 요코즈나(橫綱)는 모든 선수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효 한가운데에서 양다리를 번갈아 들었다 내리고 두 손을 펼쳤다 모으는 의례를 치른다. 다소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격식이지만 경기가 계속되는 보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선수는 심판 판정에 절대 복종한다. 승자가 경기장 내에서 마음껏 환호해서도 안 된다. 패자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일본식 사고방식 때문이다. 2009년 1월 몽골 출신의 아사쇼류(朝靑龍)가 극적인 우승을 거둔 뒤 두 손을 치켜들었다는 이유로 스모협회의 공식 경고를 받았을 정도다.

일본의 가장 전통적인 운동답지 않게 스모 선수 중엔 외국인이 적지 않다. 몽골을 비롯해 러시아 그루지야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선수들이 즐비하다. 씨름선수 출신의 한국인도 있다. 일본의 옛날식 상투머리를 한 파란 눈의 서양 선수가 도효 위에서 일본 전통의식을 치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성적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최근 5년 동안 치러진 30차례의 경기에서 일본 선수가 우승한 것은 한 번뿐이다. 지난해 여섯 경기는 몽골 선수들끼리 우승을 나눠 가졌다. 일본 선수들은 우승 언저리에도 끼지 못했다. 10년쯤 전에는 미국 하와이 출신 선수가 모래판을 장악하기도 했다. 요코즈나엔 현재 몽골 출신 2명만 올라 있다. 그럼에도 관중은 어느 누구도 스모가 외국선수들의 잔치가 돼버렸다고 눈을 돌리지 않는다. 일본 국민은 스모가 국기라는 점을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는다. 매 홀수 달에 열리는 스모 경기는 항상 만원이다. 스모 속에는 수백 년 이어져온 전통과 함께 국제화 또한 상당히 녹아든 듯하다.

도쿄의 료코쿠(兩國) 스모 전용경기장인 국기관 입구엔 16세기 전국시대를 평정했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스모를 관전하는 대형 그림이 있다. 열렬한 스모 팬이었던 그는 넓은 들판에서 한 명이 쓰러질 때까지 계속되는 스모 경기가 너무 길어지자 경기장 넓이를 제한했고, 승패에 대한 다툼이 잦아지자 심판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스모를 제도화한 주인공인 셈이다. 일본은 역사적 영웅 오다 노부나가와 스모를 이렇게 연결함으로써 스모 속에 전통과 국제화뿐만 아니라 역사까지 버무려 넣었다. 우리가 밖으로만 눈을 돌리려 하는 국제화가 잘만 하면 전통과 역사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는 점을 스모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요코즈나는 성적이 떨어지면 아래 등급으로 강등되는 게 아니라 은퇴를 종용받는다. 사회 경제적으로 매우 높은 대우를 받는 요코즈나가 모래판에서 자꾸 넘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선수 개인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NHK 방송은 전통보존 차원에서 스모의 전 경기를 생중계한다. 협회와 선수, 팬과 사회 전체가 똘똘 뭉쳐 전통 스포츠의 권위를 세우려 애쓴다. 법 위에 잠자는 사람을 법이 구제하지 않듯이, 스포츠나 전통 또한 스스로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는 법이다. 가장 전통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국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윤종구 도쿄 특파원 jkma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