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동 칼럼]선비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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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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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화두는 조국의 선진국 진입이다. 어두운 터널과도 같은 지난해의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새롭게 부각시키는 데 성공한 이명박 대통령은 “국격(國格) 향상의 전환점을 맞아 일시적인 평안함보다 지금까지 누적된 고질적인 잘못과 구조적인 문제점을 바로잡아 백년대계를 도모하고 선진국 진입의 초석을 다지겠다”는 뜻을 국정 지표로 밝혔다.

중도 실용주의를 표방했던 이 대통령이 이런 목표를 설정한 것은 정치적인 선언만이 아니다. 그는 취임 초기에 보였던 시행착오의 시험 단계를 극복하고 지난해 녹색 산업의 기치 아래 국민이 피땀으로 이룩한 국력을 바탕으로 지구촌을 놀라게 하는 두 가지 큰 실적을 거뒀다.

하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국발 금융위기를 가장 신속히 극복하고 올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주최국이 됐다는 점이다. 1세기 전까지만 해도 이 나라는 국제 정세에 어두운 은둔국이었다. 다른 하나는 30년 전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하청업체로서 설움을 겪었던 한국이 기술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과 프랑스를 이기고 아랍에미리트로부터 47조 원 규모의 원전 수주를 성사시켰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가 선진국 진입의 전환기에 들어섰다고 말하기에는 극복해야 할 요소가 너무나 많다. 경제적으로 일부 서구 선진국에 비해 우위에 있다 하더라도 문화적으로 그들을 크게 앞질렀다고 말할 수 없다. 미국 하버드대의 고(故) 라이샤워 교수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다이너미즘, 즉 “생명력은 넘쳐흐르지만, 거칠다”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한국적 야성(野性)을 이상적으로 승화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조선시대의 선비정신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것을 낡은 것이라고 팽개쳐 버린 지 오래다.

지도층이 ‘선진국 가는 길’ 역행

대다수 국민은 지금도 온갖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닦고 있지만 그들을 대표하는 지도층에 속하는 정치인은 화합을 못하고 폭력까지 행사하는 ‘야만의 시대’를 연출한다. 그들은 권위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에 피켓을 들고 들어와 수라장을 만들고 심지어는 도끼로 의사당 회의실 문을 파괴하는 행위까지 저질렀다.

세밑에 국회가 몸싸움을 하며 새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해야만 하는 살벌한 진풍경은 지난해 12월 중순 미국 상원이 공화 민주 양당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국민의료법안을 투표로 통과시키는 조용한 장면과 대조적이었다. 정치판은 이렇다 치더라도 지식인도 그에 못지않다. 학문의 당파성이니 뭐니 하며 내걸더니 그 다음에는 학문권력을 위한 투쟁을 하고, 그에 따른 권력과 돈의 맛을 보더니 이제는 권력과 돈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 문화 예술인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라는 말도 있다.

우리 사회의 상부구조가 이러하니 하부구조의 어두운 면은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점은 금광석을 제련해서 금을 만들어 내듯 국민의 거친 정서적 에너지를 절제와 균형으로 품위 있게 만드는 일이다. 해결 방법의 하나는 인문학 교육이다. 인문학 교육은 전인교육에 속하므로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인격을 형성하고 올바른 판단력을 갖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지적재산이다. 경제가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부의 축적 목적이 정신문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일에 귀착되지 않는다면 타락과 부패가 따르기 마련이다.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담론’인 언론이 인문학적인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고 국민의 교양을 함양시키는 일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 시카고대의 영문학자이자 언론학자인 웨인 부스 교수는 상업적인 목적 때문에 언론인이 일반 독자로 하여금 사물을 꿰뚫어 보는 인문학적인 비판 능력을 키우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독자가 속해 있는 낡은 정치와 문화의 틀은 화석처럼 굳어져 아무런 발전을 이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학교육 강화해 국격 키워야

인문학 교육의 강화는 이 대통령의 새해 화두인 선진국 진입 전략에서 빠뜨릴 수 없는 기초 항목이다. 이 대통령의 지난해 치적 가운데서 교육 분야가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지금처럼 눈에만 보이는 경제논리만을 앞세워 인문학을 고사(枯死)시킨다면 결과가 당장에는 나타나지 않겠지만 머지않아 큰 재앙이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 국격을 높이는 일은 경제 살리기와 더불어 교양교육을 통해 국민 개개인을 품격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데 있다.

이태동 문학평론가·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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