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생명의 날갯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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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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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에 대하여 김영근, 그림 제공 포털아트
고독에 대하여 김영근, 그림 제공 포털아트
철새가 떼 지어 이동하는 게 자주 눈에 띄는 계절입니다. 우리가 무심하게 지상에서 생명활동을 하는 동안 창공에서는 다양한 새 떼가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장에 따라 쉼 없이 날갯짓하며 어딘가로 갑니다. 우리가 아는 새 중에 참새 같은 텃새를 제외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철새 혹은 떠돌이새입니다. 우리가 즐겨 말하는 유목(nomad)처럼 대부분의 새도 한 곳에 정착하여 살지 않고 쉼 없이 어딘가로 갑니다.

철새의 이동경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2만5000km를 이동하는 철새가 있는가 하면 북극에서 남극까지 이동하는 철새도 있습니다. 그들의 이동경로는 생명을 건 처절한 모험의 여정입니다. 새는 기상을 예측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동하는 도중 온갖 위험에 노출되고 그것으로 인해 해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조류가 생명을 잃는다고 합니다. 태풍과 눈보라, 안개와 폭우를 만나거나 한밤의 시야 장애 때문에 이동 중인 철새가 한꺼번에 떼죽음을 당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철새는 왜 이동하고, 어디를 거쳐 어떻게 제자리로 돌아올까요. 그 신비를 알아내려고 인류는 오랜 세월 공력을 들였습니다. 지금도 발목에 가락지를 끼워 각국에서 날려 보낸 수백만 마리의 철새가 세계 각처를 날아다닙니다. 하지만 철새의 신비에 대해 인류는 아직 희미한 윤곽 정도밖에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계절마다 낮의 길이가 달라져 새가 이동불안(migratory restlessness)을 느낀다고 하는 설, 지구 자기장을 이용해 이동한다는 설, 태양과 별자리를 방향지표로 삼는다는 설이 있지만 모든 조류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철새는 인간의 근본을 생각하게 합니다. 고갱의 마지막 대작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떠올리게 하고 목숨을 건 유목의 세월을 견뎌온 인류의 조상을 생각하게 합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는 철새처럼 쉬지 않고 어딘가로 이동하는지 모릅니다. 자신이 정착민이라는 믿음, 자신이 텃새라는 믿음조차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찰나적이고 한정적인 망상일 수 있습니다.

철새를 보며 생명체의 본능 속에 아로새겨진 숙명의 회로를 생각합니다. 기는 짐승은 죽을 때까지 기다가 죽고, 걷는 짐승은 죽을 때까지 걷다가 죽고, 뛰는 짐승은 죽을 때까지 뛰다가 죽고, 나는 짐승은 죽을 때까지 날다가 죽어야 하는 숙명의 회로.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숙명에 부응하는 생명체의 몸짓은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장렬합니다.

지금, 우리는 모두 어디로인가로 갑니다. 본능 속에 아로새겨진 숙명의 회로를 따라,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의 극점을 향해 쉬지 않고 갑니다. 다리가 아니면 날개, 그것이 있으니 쉼 없이 움직이고 쉼 없는 변화를 창출합니다. 영원한 변화, 그것이 곧 우주의 섭리이자 생리이니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그 리듬에 맞춰 자기 삶의 춤을 춥니다. 고독해서 아름다운 생명의 날갯짓, 그대는 지금 어디로 가나요.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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