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박관영]2100년 한반도는 아열대

  • 입력 2009년 9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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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년 7월 20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사는 직장인 김 씨는 주말농장으로 가기 위해 전기차에 몸을 실었다. 주말농장으로 가는 고속도로 주변의 가로수들이 바나나 나무인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유난히 바나나를 좋아하시던 할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얘야, 나 어릴 때에는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바나나의 대부분은 수입했고 일부만 제주도에서 재배했었다”라고 말하곤 했다.

2시간 만에 주말농장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매미채를 들고 100년 전 중국에서 들어온 주홍날개꽃매미를 잡으러 뛰어갔다. 뒷산에 소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고 졸참나무 떡갈나무 등 활엽수만 무성하다. 유난히 조용한 뒷산을 보면서 김 씨는 이제 우리나라 산에서 참매미 말매미 쓰름매미 등 고유한 종은 볼 수가 없다는 점을 떠올렸다. 그 매미들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사라진 지도 오래됐다.

멀리 보이는 들판에서 5월부터 매일 한 차례씩 내리는 소나기로 무성해진 풀을 물소 떼가 한가로이 뜯고 있다. 옆에 있던 아내는 저 시커먼 물소들 때문에 전통 한우가 줄어들고 있어서 한우 값이 계속 오른다고 걱정했다.

주말농장에서 자신이 직접 재배하고 있는 망고 구아바 파파야 등을 후식으로 먹으면서 김 씨는 해양생태계의 변화에 대한 보고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요즘 동해에서 많이 잡히는 가오리는 열대해양에서 서식하는 노랑가오리로, 맛이 없어 팔리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어부들의 이야기와 남해안에서 서식하던 산호초가 서해와 동해까지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서 김 씨는 우리나라 해양생태계가 무척이나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기지개를 켜던 중 김 씨의 시선이 벽에 걸린 액자 사진에 닿았다. 지난해 겨울, 눈이 온다는 기상예보 소식에 김 씨는 친구들과 함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눈 사진을 찍으러 근교의 공원을 찾았다. 그러나 눈은 바람에 날리다가 녹아 없어져 버렸고, 결국 설악산으로 먼 길을 떠나야만 했다.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무렵, 김 씨에게 요새 기후변화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온이 오르면서 겨울 한파가 사라지고 2월 초면 꽃이 피며, 열대성 과일이 과수원의 주요 품종이 됐다. 사과와 복숭아 포도는 강원 북부나 북한에서만 재배가 가능하다. 명태와 대구는 수십 년 전에 사라졌고 오징어와 고등어 멸치가 주요 수산자원이며, 심지어 참치 양식장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 있다.

이야기책에 자주 등장하던 ‘강남 가는 제비’는 아예 텃새가 됐고, 늦가을 밤하늘에 길게 늘어서서 찾아오는 기러기는 노랫말 속에서나 살아 있다. 앵무새가 주변에 흔하게 된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지구온난화로 우리의 삶과 주변 환경이 엄청나게 변해왔고, 앞으로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 것인가를 상상하니 두려움에 몸이 떨렸다.

이상은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 4차 보고서의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A1B)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기후를 모의한 결과에 따라, 2100년 한반도에서의 삶을 상상해 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아열대의 기후 특성을 보이는 곳은 제주도와 남해안 일부 지역뿐이다. 21세기 말 한반도 기온은 4도 상승하고, 강수량은 1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극한 저온현상이 감소하는 등 겨울은 따뜻해지는 반면에 여름이 길어지고 폭염, 열대야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온난화로 인해 우리나라의 기후는 서해안, 남부지방 및 동해안, 경기, 충청 일부 지방까지 아열대 기후의 특성을 보이게 될 것이다.

박관영 기상청 기후변화감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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