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시인의 그림 읽기]구름을 살려내기 위하여

  • 입력 2006년 11월 1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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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 낀 날’ 그림=호더 하더디(이란)·큰나 펴냄
‘구림 낀 날’ 그림=호더 하더디(이란)·큰나 펴냄
구름은 목화를 닳았다.

엄마는 구름을 끌어다 실을 자아내 재킷을 짜 주셨다.

그걸 입으니 나는 아주 가벼워졌다.

‘구름 낀 날’이라는 이 작품은 제목도 우울한데, 구름이 잔뜩 끼었는데도 왜 비가 오지 않느냐는 얘기가 계속되어 답답하다가, 엄마가 구름을 끌어다 실을 자아내 재킷을 짜 주셨다는 구절 때문에 겨우 살아났다고나 할 그런 작품이다.

그런데 ‘구름 낀 날’은 우리를 무겁게 하지만 ‘구름’은 그렇지 않다. 내가 어느 날 여행을 떠나려고 집을 나서면서 ‘나는 구름을 손에 잡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힌 걸 보면 구름은 다름 아닌 마음의 돛이요, 또 그 돛에 불어오는 바람의 원천이다. 바다는 구름을 낳고 구름은 바람을 낳고 바람은 돛을 낳고….

그런데 2006년 10월 9일 우리의 뒷마당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한 뒤 구름의 낭만주의는 사라졌다.

이쪽 공기에서도 방사성 물질들이 검출되었다니 이제 구름은 우리를 가볍게 하는 게 아니라 무겁게 하고 마음의 돛이 아니라 가위 눌리는 악몽이 되었다.

이제 구름은 뭉게구름 새털구름 비구름 하는 식으로 분류되는 게 아니라 방사성 물질을 머금은 크세논구름 크립톤구름 요오드구름 세슘구름 하는 식으로 분류해야 될 모양이다. 우리는 풍경을 몰수당한 것이다. 산이든 강이든 하늘이든….

그러나 이제 풍경을 되찾고 구름을 살려내는 일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다. 구름은 실로 우리의 살이요, 피에 다름 아니다.

십수 년 전 나는 제임스 러브록이 쓴 ‘가이아의 시대’라는 책에서 식물성 플랑크톤 에밀리아나 헉슬리가 구름의 씨앗인 황화메틸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뛰어나 생물계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의 하나라는 얘기를 읽고 ‘구름의 씨앗’이라는 작품을 쓴 일이 있다. 거기서 “에밀리양 없이 구름 없듯이/구름 없이 내가 있어요?/구름을 죽이지 마세요/죽은 구름은 죽은 우리/죽은 구름은 죽은 하늘/죽은 하늘은 죽은 땅…”이라고 노래한 것이 더욱 실감을 얻고 있으니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구름을 살려내어 프랑스 시인 쥘 쉬페르비엘의 “구름이 싣고 갈 수 없으리만큼 무거워 보이는 것이란 없네”라는 구절에서 보는 구름과 같은 구름에 우리가 항상 올라앉아 있게 되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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