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김규한]북 핵실험 했어? 두 손 든 한국과학

  • 입력 2006년 10월 2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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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실험 이후 진행된 일련의 과정에서 국내 기초과학의 어두운 면을 보고 과학자로서 미래를 염려하게 됐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한 뒤 온 국민과 세계인의 눈귀가 북한 핵실험의 진위와 핵실험 여파에 집중됐다. 과학자는 물론 일반 국민은 핵실험의 내용과 장소, 또는 핵실험 사실 여부를 국내 연구진이 밝히기를 기대했다.

핵실험에 사용되는 방사성 동위원소는 원자력발전소에서 핵에너지 원료로 사용하는 우라늄(235U)이 핵붕괴 시에 발생해 원자력 반응로의 연료봉에 축적된 플루토늄(Pu)이다. 백색 금속 플루토늄의 방사성 동위원소인 239Pu은 핵분열을 일으키는 성질이 있다.

플루토늄 핵분열 시 발생하는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해 만든 핵폭탄이 1945년 일본 나가사키(長崎)와 히로시마(廣島)에 투하되면서 고열과 폭풍 또는 방사능으로 수십만 명이 숨지고 막대한 재산 피해를 냈다. 방사능 피폭의 피해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무서운 핵폭탄을 제조하기 위한 핵실험이 비핵화를 추구하는 평화로운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더 놀라운 점은 핵실험 여부와 실험장소 예측을 한국 미국 일본 연구진이 서로 다르게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신속하게 핵실험 사실을 지진파로 감지했다. 미국과 일본의 연구팀과는 달리 국내 연구팀이 밝힌 핵실험 추정 장소는 두 차례에 걸쳐 번복됐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핵실험의 위치 추정은 지진파가 발생한 진앙(핵실험의 경우 핵실험 장소)의 위치 결정 원리와 방법이 동일하다. 즉, 지진파인 P파와 S파의 도달 시간차의 정보를 이용해 진앙의 위치와 심도 및 지진의 강도(핵실험의 위치와 강도)를 결정한다. 지진파의 파형 정밀 분석으로 인공 지진(핵실험과 같은 것)과 자연 지진을 식별할 수도 있다.

핵실험 전후에 부가적으로 확인하려면 위성사진 판독이나 주변의 공기 중에서 핵실험 때 발생하는 크세논(Xe), 크립톤(Kr), 요오드(I), 세슘(Cs) 같은 방사능 물질의 동위원소 농도 변화를 측정하면 된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의 재, 방사능 낙진은 토양이나 자연 생태계를 통해 인체에 유입된 뒤 장기간에 걸쳐 질병을 유발한다.

대기 중의 방사성 핵종의 검출에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수반된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방사능 낙진 측정 자동감시망을 가동해 탐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검출 장비의 일부를 스웨덴의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임차해 측정을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위험 수위의 방사능 낙진이 발생했다면 우리 국민은 이미 방사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공기 중 방사성 원소의 농도가 낮을 경우 이를 분석할 실험장비나 시료 포집 기술도 국내에 없다고 전문가가 토로했다.

지진파 분석, 위성사진 판독, 방사능 물질 탐지 등 어느 하나도 만족한 해답을 가져다주지 못한 현실에서 기초과학의 현 수준에 대한 위기감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북한 핵실험과 관련해 정부를 대표하는 일부 연구소의 발표 외에 국내 싱크탱크인 대학은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가정책연구소의 연구시설과 연구 능력을 향상시키는 일은 꼭 필요하다. 고급 두뇌집단인 대학 실험실 역시 특수 첨단 실험장비를 도입하고 기초과학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과학 연구자나 과학 교육자의 자성도 뒤따라야 한다. 과학기술은 국력을 반영한다. 한 사회의 역량을 보여 주는 지표이다. 과학기술적 측면에서 북한 핵실험이 주는 교훈을 잊으면 곤란하다.

김규한 이화여대 교수·과학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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