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김승련]정부 브리핑의 진실 게임

  • 입력 2006년 9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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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자들, 특히 백악관과 국방부를 취재해 온 기자들은 요즘 자괴감에 시달린다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지난 5년간 자신들이 썼던 기사가 부끄럽다는 것이다. 대략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거론된다.

‘체니 부통령, 9·11테러와 이라크 연결고리 점차 확신’(후에 알 카에다와 사담 후세인의 연관성은 입증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비밀개발 가능성 점점 커져’(WMD 개발 증거를 못 찾은 것으로 확인), ‘이라크, 니제르에서 핵물질 구매했다고 부시 대통령이 공개’(의심은 갔지만 구매 사실은 입증 안 돼).

기자들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제공하는 논리를 수첩에 받아 적기에 바빴다고 자책했다. 정권의 감시견(watchdog)을 자임하던 자신들이 전쟁논리를 홍보한 데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프랭크 리치는 기자와 미디어를 ‘활용’한 정권에 대한 ‘찝찝함’을 속으로 꾹 참고 누르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신간 ‘The greatest story ever sold’를 냈다. ‘최대 흥행을 기록한 정권 홍보용 기사’ 정도로 번역할 만하다.

서점에서 이 책의 서문을 넘겨 보면서 ‘현장 기자란 진실을 얼마나 알고 취재해야 독자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인지’를 마음속으로 물었다.

정확한 답은 알지 못한다. 다만 언젠가 ‘뛰어난 외교 담당 기자라도 실제 벌어지는 일의 20, 30% 이상을 알기 어렵다’는 말을 들은 일이 생각났다. 이 말을 한 고위 외교관은 기자의 체면을 고려해 좀 수치를 높여 준 것 아닌가 싶다.

“한국 기자들 참 불쌍하다. 저렇게 수십 명이 베이징에 몰려가 6자회담을 취재하지만 엉뚱한 설명 때문에 영 딴 곳만 짚고 있다.”

6자회담 기사가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던 그 순간에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그 정도냐’며 태연해했다. 그러나 기자의 속마음까지 그랬을 리는 없다.

“제대로 된 기자란 당국자의 설명이 1개월 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 미세한 차이를 짚어 내 가며 상황 변화를 가늠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당국자의 브리핑은 행간의 변화를 읽는 것 자체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이게 현실이다.” 다른 외교관의 말이다.

이쯤 되면 기자만을 탓하기도 어려울 듯싶다. 국민과 역사를 상대로 하는 외교 현안 브리핑을 하고 ‘내부 현안을 잘 아는 동료’에게서 이런 정도의 평가를 받는다면 그건 당국자의 책임도 크다고 봐야 한다.

올여름, 2000년 이후 한미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최고위급 인사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정상회담 직후 열린 외교책임자의 기자 브리핑을 지켜봤다. 씁쓰레한 표정으로 그는 “내가 본 회담과 장관의 브리핑이 이렇게 차이가 커서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정부의 브리핑에서 ‘유리한 해석(spin)’을 곁들일 수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어느 나라, 어느 정부건 상궤를 벗어나지 않는 ‘스핀 걸기’는 존재해 왔다.

그러나 한국 기자들이 듣는 핵심 외교 현안에 대한 브리핑이 내부자가 보기에도 겉돌고 있다면 문제는 다르다. 단지 참여정부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거창하게 역사의 평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2, 3년 뒤 평가’에 떳떳할 수 있는 당국자가 늘어난다면 언론이 눈뜨고 당하는 일은 줄어들 거란 생각이다.

기자들의 분발이 첫 단추라고 본다. 누구도 어설픈 둔사(遁辭)로 피해 가기 어렵게 만드는 역량, 주관과 편견에 휩쓸리지 않는 자기 단련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귀담아들어야 할 것 같다. 당국자들의 변화도 기자들의 몫이다. 2, 3년 전 당국의 설명이 얼마나 적실했는지를 잊지 말고 따져 보는 기사를 쓴다면 당국자들도 옷깃을 여미게 될 것이므로….

김승련 워싱턴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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