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법조 3륜]<2>法-檢구속영장 신경전

  • 입력 2006년 9월 27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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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서초구 법조타운에 위치한 대법원과 대검찰청 건물. 법조3륜이 삐거덕거리는 가운데 두 건물의 거리가 더욱 멀어 보인다. 강병기 기자
25일 서울 서초구 법조타운에 위치한 대법원과 대검찰청 건물. 법조3륜이 삐거덕거리는 가운데 두 건물의 거리가 더욱 멀어 보인다. 강병기 기자
《이달 초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조타운 근처의 한 카페. 우연히 합석하게 된 A 부장판사와 B 부장검사는 한참 동안 언쟁을 벌였다. 최근 법원이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잇달아 기각하면서 자연스레 이 문제가 화제가 됐다. 폭탄주가 몇 순배 돌자 A 부장판사는 “공모 관계를 밝힌다는 명목으로 영장을 발부받아 통화기록을 조회하고, 여자관계라도 나오면 그런 약점을 이용해 자백을 받아내려는 것 아니냐”고 검찰의 수사 관행을 비판했다. 그러자 B 부장검사가 발끈했다. 그는 “계좌 추적이나 통화기록을 조회하다 엉뚱한 게 나오면 그런 충동을 느낄 때도 있지만 요즘 검찰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 부장판사 역시 밀리지 않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B 부장검사도 피의자 신분이 돼 보세요. 사생활이 다 파헤쳐진다고 하면 기분 좋겠습니까? 그런 영장을 어떻게 발부해 줍니까?”라고 맞받았다.》

최근 이용훈 대법원장이 전국 법원을 순시하면서 “영장 발부를 신중히 하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일선의 판사와 검사 간 신경전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양자의 갈등은 기관 간 영역 다툼의 성격이 강해 서로가 양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계속되는 영장 다툼=2001년 이후 매년 12.7∼14.8% 수준을 유지하던 전국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률은 지난달 19.6%로 높아졌고, 이달 들어 대부분의 지방법원에서 20%를 훌쩍 넘어섰다.

이런 추세는 최근 이 대법원장의 지방법원 순회 방문 이후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이 대법원장이 13일 광주지법을 방문해 “구속되거나 압수수색을 당한 사람들 눈에서는 피눈물이 난다”고 말한 이후 광주지법에선 20일까지 영장 기각률이 36%나 됐다.

검찰의 상징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청구한 압수수색과 구속영장조차 줄줄이 기각되면서 일선 검사들의 불만과 위기감은 극에 달해 있다.

최근 대검 중수부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인수 의혹과 관련해 청구한 주요 피의자 4명의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됐다. 론스타 관계자에 대한 통신조회 신청 4건도 기각됐다. 100%에 가까운 구속률을 자랑하던 대검 중수부로선 자존심을 구긴 셈이다.

사행성 성인게임 비리를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수사 초기 청구한 핵심 피의자 2명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문화관광부 공무원들의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도 대부분 기각됐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이 일단 구속부터 한 뒤 자백을 받아내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구속이나 압수수색에 대한 양 기관의 근본적인 시각차에서 비롯된다.

이 대법원장은 시사 월간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구속은 형벌이 아닌 재판을 위한 절차”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수사를 위해 구속이나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해 달라는 건데 지금 법원은 수사를 완결하고 나서 영장을 청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해 전체 형사 입건자 중 구속자 비율(구속점유율)은 2.6%. 올해는 1.8% 수준으로 더욱 떨어졌다.

10%가 넘는 미국은 물론 우리와 사법 시스템이 비슷한 일본이 5, 6%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서도 상당히 낮은 수치다. 이들 국가에서는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수치상으로는 거의 100% 가까이 발부되고 있다.

반면 우리는 매년 구속 기소돼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60%를 넘는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거나 그 전에 보석 등으로 석방된 경우까지 합치면 80%를 웃돈다.

이 때문에 검찰은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과 방어권 보장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사법 현실에선 구속이 어느 정도 형벌의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범죄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가해자가 재판에서 대부분 풀려나는 우리 현실에서 일단 구속이라도 돼야 심리적인 보상을 받게 된다는 설명이다.

▽확대되는 권한 다툼=상당수 일선 검사들은 최근 주요 사건 핵심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가 본안 재판처럼 진행되고 있는 데 대해 극도의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구속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뛰어넘어 유무죄 판단까지 하고 있다는 것.

한 중견 검사는 “재판은 법대로 하자면서 왜 영장 심사는 법대로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법원이 사실상 수사 지휘를 하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법원은 검찰은 영장 청구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시행 중인 공소심의위원회 제도에 대해 “검찰이 유무죄 판단과 양형권을 갖고 있는 사법부 영역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검찰 신문 조서보다는 법정에서의 진술을 우선시하는 공판중심주의 역시 사법제도 개혁으로 포장되긴 했으나 사법 영역에서의 주도권 싸움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뿐 아니다. 대법원과 법무부 사이엔 호적과 등기사무의 이관 문제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이 대법원장은 19일 대전고·지법을 방문한 자리에서 “호적·등기사무까지 내놓으라고 하는데 법원이 가만히 있다가는 재판사무 외에는 다 뺏기게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법원이 호적·등기사무를 담당하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잔재”라며 “호적·등기사무를 법원이 맡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 한국만의 ‘법조3륜’

이용훈 대법원장과 일부 판사가 ‘법조3륜’이라는 표현을 더는 쓰지 말아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것을 계기로 법원과 검찰, 변호사단체 간의 관계는 변화를 맞을 것 같다.

법조계의 3대 축을 일컫는 용어인 법조3륜은 한국의 특수한 사법체계에서 탄생한 표현이라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시각.

판사 검사 변호사가 모두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을 나란히 거친 사실상 동료, 선후배라는 동질감을 표현하는 뜻이 이 용어 속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한국과 사법시스템이 전혀 다른 외국에서는 이런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판사는 검사나 변호사로 10∼15년 동안 법률 지식과 실무를 익힌 뒤에 진출하고 지방 검사장도 주민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게다가 사법시험이 아니라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각 주에서 실시하는 자격시험을 거치기 때문에 법조인의 동료의식도 약한 편이다.

법조 경력이 훨씬 풍부한 판사의 우월적인 지위는 인정하되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법정에서 서로 견제하는 관계다.

한국에서는 법조3륜의 끈끈한 관계가 유착으로 이어져 법조비리 사건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때문에 판사, 검사 등을 미국처럼 일정 경력 이상의 변호사 자격 소지자 중에서 임명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재판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고 ‘전관예우’라고 하는 법조 비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

최근 법원과 검찰도 경력 변호사 출신의 임용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법조3륜은 1971년 제1차 사법파동이나 1997년 영장실질심사 제도 등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첨예하게 대립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2004년 사법시험 합격자가 1000명을 넘어서는 등 법조계의 소수정예 엘리트 구조가 붕괴되고 법조인력 내부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각 기관 간 갈등이 불가피해진다는 것.

서강대 임지봉(법학) 교수는 “법조3륜은 국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이들은 조화와 협력을 추구하기보다는 국민에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서로 견제하는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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