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서령]청계천 휴머니즘

  • 입력 2006년 9월 27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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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치가 청계광장 폭포 아랫부분까지 올라왔다는 뉴스를 듣는다. 생태학자들이 폭포 아래 장기 서식하는 그놈들을 관찰했다 한다. 갑자기 향내가 코끝을 휙 지나간다. 버들치의 향내를 맡아 본 적이 없건만 청계천에 사는 버들치란 이름 자체에서 싱그럽고 산뜻한 기운이 내 머릿속에 불어온다. 야호! 청계천은 이제 더는 급조된 시멘트 물길이 아니다. 장마가 지난 뒤 청계천에는 버들치뿐 아니라 줄납자루, 끄리, 대륙송사리 같은 물고기가 23종으로 늘어나고 큰개여뀌, 개갓냉이, 석죽, 털별꽃아재비 같은 물가 식물이 자라고 민물가마우지 같은 새가 무시로 날아온다 한다.

청계천을 복원한 지 이제 일년이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앞에서 성동구 마장동 신답철교까지 불과 5.8km의 물길. 그게 서울 사람의 삶의 양식과 기운을 바꿔 놓았다. 청계천가에 한번도 나가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거기 물길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위안이다. 도시는 위로만 사납게 뻗어 가는데 물은 천천히 누워서 흐른다. 사람들은 누워서 흐르는 물을 보러 자꾸만 물가로 나간다.

흐르는 물이 무슨 특별한 구경거리일 리 없건만 물은 예전부터 사람을 자꾸만 제 곁에 불러 모았다. 흐르는 물 곁에서 물을 바라보는 사람은 제 본성의 가장 깊은 곳과 연결된다. 물은 우주 저 멀리와 내가 선 이곳을 연결한다. 청계천가에서 물을 보며 걷는 사람은 종로의 아스팔트 길을 걷는 사람과 다르다. 어깨를 부딪쳐도 상대에게 대뜸 화를 내지 않는다. 곁에 흐르는 물이 마음속의 화를 꺼 주기 때문이다.

도시에 물이 필수인 건 생활용수로서의 효용 때문만이 아니다. 빌딩과 도로와 자동차의 딱딱하고 강하고 거친 기운을 눅이고 어루만지는 부드럽고 순한 무엇인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게 물이다. 아무리 폭이 좁더라도, 아무리 억지로 끌어올리더라도 도심에 물이 흐르는 것과 흐르지 않는 것은 삶의 질 면에서 천양지차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가에 사람이 모여드니 자생적으로 축제가 벌어진다. 신명을 돋우는 일이 자꾸 새롭게 궁리된다. 춤추고 노래하고 피리 불고 장구 치고 달리고 얼싸안는다. 물가에서 우린 다들 너그러워진다.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봐도 강변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일은 잘 없었다. 긴 겨울밤 남의 집 사랑방에 모여 묵 내기 화투를 치던 사람들은 큰소리를 내며 멱살을 잡기도 했지만 여름밤 강변에 모여들어 호박전을 부쳐 먹던 사람들은 드잡이하며 다투지 않았다.

물 곁에서 인간은 부드러워진다. 선해진다. 물 기운은 사람 안에 내재한 공격성을 죽여 놓는다. 그러니 춤추고 노래 부를 수밖에 없다. 청계천가에서 크고 작은 문화행사가 자생적으로 열리고 있다. 한화그룹 본사 앞에선 금요 정오음악회가 열리고 청계광장에서는 수요예술제가 정기적으로 개최된다. 한 달에 36개 팀이 250회의 공연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교보빌딩에 볼일이 있어도 나는 웬만하면 횡단보도를 지나 청계천 물을 보러 간다. 컴포넌트 오디오를 가져다 놓고 군데군데서 춤추는 청년, 갈대와 부들을 헤치며 물가에서 사진 찍고 깔깔대는 처녀…. 그들의 신명과 젊음이 내 피 안에 고대로 전염된다. 괜히 슬금슬금 웃음이 난다. 물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 그게 갑자기 위로 휙 솟구치자 사람의 입에서 맑은 외침이 튀어나온다. 고층의 최신 인텔리전트 빌딩 앞에서 햇빛을 반사하는 물고기의 비늘이라니!!

청계천에 물을 흘려 놓고 거기 다시 버들치를 살려 놓았다. 그걸 보고 질러 대는 처녀아이의 환호성, 그 이상 가는 고급 문화가 또 있을까.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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