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보 광]죽이는 말, 살리는 말

  • 입력 2006년 10월 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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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사를 지나다 보면 은은한 독경 소리가 들려온다. 이때 처음 시작하는 소리가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다. 절에서는 아침에 일어나면 입부터 씻으면서 “정구업진언 수리수리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라고 한다. 그리고 이는 경전을 읽든, 불공을 하든 간에 모든 의식의 시작이다. 즉, 입부터 깨끗이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잘못된 말을 참회하고 난 후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몸과 입과 뜻의 삼업(三業) 중 다른 업은 세 가지씩 있으나 구업(입)에는 거짓말(망어·妄語), 한 입으로 두 가지로 하는 말(양설·兩舌), 욕하는 말(악구·惡口), 비단같이 꾸미는 말(기어·綺語) 등 네 가지를 나쁜 말로 규정하고 있다. 그만큼 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서로를 소통시키는 말은 잘 사용하면 행복한 것이지만 잘못하면 불행을 자초하게 된다.

지난여름 전 세계인이 지켜본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의 세계적인 축구 스타 지네딘 지단이 이탈리아의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해 퇴장당하는 일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의 까닭을 모두들 참으로 궁금해하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마테라치가 지단에게 한 모욕적인 한마디 말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잘못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상대방을 격분케 하고 이성을 잃게 하는지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요즈음 국내외를 막론하고 경솔한 말 때문에 화를 당하고, 상대방을 분노케 하여 서로 대립하는 일이 적지 않다. 아무리 바른말이라고 할지라도 직설적으로 표현하여 상대를 속상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격이 급하고 직설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한다.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관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만다. 그러고 나서 자신은 뒤끝은 없다고 한다. 이는 자신이 한 말을 금방 잊어버린다는 뜻이며, 그러한 것은 좋은 성격이라고 하는 변명처럼 들린다. 즉, 그 말에 대한 감정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말로 당한 사람은 그 상처가 오래간다. 말한 사람은 금방 잊어버리지만, 당한 사람은 그 말 한마디가 평생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찌 남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주고 뒤끝 없다는 것으로 변명이 되겠는가? 만약 거기에 뒤끝까지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말 잘하는 달변가보다 어눌하더라도 진실한 말을 하는 사람을 우리 사회는 원한다. 말은 진실해야 하고, 부드러워야 하며, 사랑이 깃들어 있어야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

중국 당나라 때 무착(無着)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무착 스님은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 천신만고 끝에 문수보살이 머물고 계신다는 오대산에 당도하였다. 그는 고행을 감당하면서 오로지 문수보살을 만나고자 하였다. 문수보살을 만나기 전까지 그에게 주어진 소임은 법회에 오는 사람들에게 밥을 배식하는 일이었다.

하루는 그에게 한 남루한 여인이 두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타나 밥 줄 것을 청하였다. 여인이 자신과 어린아이 몫 이외에도 배 속에 든 아이의 몫까지 달라고 하자 그는 화를 버럭 냈다. 그러고 “얻어먹는 주제에 욕심이 많고 체면이 없다”고 나무라면서 욕설을 하였다. 그러자 그 여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 그는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만나고도 놓치고 만 것이다.

그는 후회하고서 다시 뼈를 깎는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 없는 그 마음이 부처의 마음일세.” 그가 깨달은 것과 같이 부드러운 말 한마디로 세상을 편안히 함이 어떠할까.

보 광 동국대 교수 청계산 정토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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