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안되는 영어 교육]<4>영어 보는 ‘색안경’부터 벗자

  • 입력 2006년 9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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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들 영어를 잘하기나 하는 거야? 재수 없게 영어로 말하고 그래.”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오고 서울대에 입학한 안모(23·여) 씨는 며칠 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 피자가게에서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안 씨는 중학교 동창인 여자 친구와 함께 본 영화 ‘괴물’에 대해 반쯤은 영어, 반쯤은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 자리의 30대 남자들이 “이런 데서까지 영어로 떠들어야 되나. 영어 없는 데서 살고 싶다”며 노골적으로 핀잔을 준 것. 학교, 기업 등 전 사회적으로 영어의 중요성이 강조되지만 한편에서는 영어 사용이 확산되면 한국어가 푸대접받고 민족의 정체성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신동일 교수는 “일반 국민이 많은 돈 안 들이고 영어 실력을 높이려면 영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반감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지난달 18∼20일 일본 후쿠오카 세난가쿠인(西南學院)대에서 열린 ‘아시아 영어교수법 국제회의’에서는 한국 중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각국의 대학교수와 전문가 1000여 명이 참석해 각 나라의 영어에 대한 인식 변화와 새로운 학습방법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일본 메이카이(明海)대 고이케 이쿠오(小池生夫) 외국어학부장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에서 영어는 ‘적’이었고 여자고등학교에서는 영어수업이 금지됐다”면서 “그런 영향이 오랫동안 남아 일본은 영어 후진국이 됐다”고 설명했다.

고이케 학부장은 “요즘은 그런 인식이 크게 바뀌어 경제 대국을 유지하기 위해선 영어가 필수라는 여론이 확산되고 정부에서도 소학교(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 중”이라고 소개했다.

북유럽의 영어 강국인 스웨덴도 영어교육 확대로 스웨덴어의 정체성이 위협받는다는 주장 때문에 사회적 갈등을 치렀던 나라. 스웨덴 교육문화부 잉리드 린드스코그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영어는 스웨덴에 위협인가, 강점인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다”며 “하지만 현재 그런 논란은 수그러들었고 교육문화부가 오히려 영어교육과 국제화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5년 스웨덴 전체 대학 박사학위 논문의 78%가 영어로 쓰였다.

한국에서도 영어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데 대한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아 왔다. 대표적인 것이 영어 조기교육과 영어 공용어화론.

1997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과정에 영어수업이 개설됐지만 한글 및 관련 교육단체들을 중심으로 영어 조기교육이 정체성 혼란을 불러온다는 반대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문화관광부 산하 국립국어원이 2005년 국민 40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영어 공용어화에 대한 찬성이 36.3%, 반대가 37.3%로 엇비슷했다. 조사결과에서 보듯 여전히 쟁점 사안이다.

■ 평가틀 적절한가

한국에서 인정받는 영어능력 평가 시스템은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토플, 토익 등. 그러나 내신시험, 수능 등 학교 성적 평가는 지나치게 읽기에 치우쳐 있고, 토플 토익 등은 실제 생활에서 구사할 수 있는 영어 실력과 큰 격차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많은 유럽 국가는 자체 개발한 별도의 영어평가 시스템을 사용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1968년부터 네덜란드교육평가원(CITO·시토)에서 자체 영어평가시험을 만들어 널리 사용하고 있다. 네덜란드 고등학교 졸업에 필요한 영어시험에는 말하기, 쓰기, 듣기가 필수로 포함된다. 국내에서도 텝스(TEPS), 토셀(TOSEL), 플렉스(FLEX) 등 7, 8개의 토종 평가가 개발됐지만 평가 틀로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토익 시험의 국내 응시자는 모두 186만여 명으로 4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여기에 든 응시료만도 630억 원에 이른다.

<특별취재팀>

김광현 기자(팀장)

장원재 기자=세부 마닐라(필리핀)

싱가포르

조은아 기자=헬싱키 엘리메키(핀란드)

스톡홀름(스웨덴)

오슬로(노르웨이)

헤이그 아른험(네덜란드)

박형준 기자=후쿠오카(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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