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노무현 標’ 민족공원 선포식

  • 입력 2006년 8월 29일 19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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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미군기지 자리에 조성하는 ‘민족공원’ 선포식은 대통령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줄줄이 참석해 국무회의를 옮겨 놓은 분위기였다. 노무현 정부는 엉겁결에 ‘이명박 표(標)’ 청계천을 만들어 주고 후회가 막급해 용산공원만은 야당 시장에게 영광을 통째로 넘겨주지 않으려는 의지가 결연하다.

기공식은 귀에 익었지만 선포식은 생소하다. 평택 미군기지가 차질 없이 완공된다면 용산 주둔 미군은 노 대통령 퇴임 후인 2008년 말 혹은 2009년 초 평택으로 이사 가게 된다. 노 대통령 임기(2008년 2월)가 기공식을 기다리지 못하니 ‘노무현 표’ 민족공원을 만들려는 급한 마음에 선포식부터 한 것이다. (요즘 노 대통령은 차기 혹은 차차기에 기공식과 준공식이 이루어질 행사의 선포식으로 바쁘다. 2009년 혹은 2012년이 거론되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도 그런 사례.)

용산민족공원은 명칭부터 코드형이다. ‘민족끼리’ ‘자주’ ‘주체’에 질린 터에, 서울 도심 국립공원에 내셔널리즘 간판을 붙이는 것이 중국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어떻게 비칠지도 불안하다. 일본 야스쿠니신사가 극우 내셔널리즘이면, 민족공원은 좌파 내셔널리즘인가. 그냥 용산공원이라면 어떨까. 대사관과 외국인이 많은 용산의 특성을 감안해 역(逆)발상으로 용산국제공원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서울시는 특별법 없이도 청계천 복원에 성공해 시민의 환호를 받았다. 청계천은 고가도로를 헐고 하천을 복원하는 발상이 탁월했고 주변 상인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에 비해 용산공원은 미군기지 터를 고층아파트 터로 팔지 않고 녹지만 조성하면 된다. 굳이 용산공원 특별법을 만들어 서울시장의 권한인 용도지역 변경권을 건설교통부 장관이 빼앗아 갈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추병직 건교부 장관은 오세훈 시장이 선포식 행사에 불참하자 “개발 주체가 정부가 되는 데 소외감을 느끼고 몽니를 부린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선포식 나흘 뒤 정부 5개 부처가 경찰까지 출동한 가운데 서울시 예비감사에 나섰는데, 괘씸죄나 아닌지 모르겠다.

서울시는 남산과 용산공원을 잇는 녹지축을 조성할 계획이다. 남산과 용산공원 사이에는 해방촌이 가로막고 있다. 1970년대에서 시계가 멈춘 다가구주택의 밀집지역이다. 해방촌 전체를 숲으로 바꾸어 놓으면 좋으련만, 그러다가는 시 재정이 파탄날 것이다. 오 시장이 2, 3개월 뒤에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한다니 기다려진다.

남산은 도심의 자연 수목원이다. 남북 순환로에는 수목이 우거져 한낮에도 햇볕을 가리는 나무 터널을 이룬다. 용산공원과 연결된 남산은 다른 나라 수도에서 보기 어려운 보배가 될 것이다.

상처투성이이던 남산이 제 모습을 꽤 찾았다. 남산을 가렸던 흉물 외인아파트 자리에는 야외 식물원이 생겼다. 남산 제 모습 가꾸기가 진행되면서 ‘남산 지하실’ 중앙정보부 자리에 유스호스텔이 들어섰다. 수도경비사령부 터에는 남산골 한옥마을이 조성돼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이 자리 잡았다.

남산 남쪽 순환로에서는 한강과 멀리 강남의 다운타운이 내려다보인다. 한강의 양안(兩岸)은 송파구 잠실부터 마포구 상암동까지 아파트의 성(城)으로 둘러싸여 있다. 한강변에 외국인이 한강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호텔 하나 없다. 우리가 먹고사는 일로 달음박질하는 사이에 산과 강이 훼손되고 서울은 삭막한 도시로 변해 갔다. 지금이라도 남산, 용산, 청계천 주변을 잘 개발하면 강남에 폭탄을 투하하지 않고서도 발전의 축이 상당 부분 강북으로 옮겨 오는 효과가 생길 것이다.

용산공원을 ‘노무현 표’나 ‘오세훈 표’로 만들려는 상표권 다툼은 그만두고 한국을 대표하는 공원으로 만드는 일에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 우선 공원 명칭부터 환경친화적인 것으로 널리 공모하면 어떨까.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황호택 논설위원이 신동아에서 만난 '생각의 리더 10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졌습니다.
가수 조용필, 탤런트 최진실, 대법원장 이용훈, 연극인 윤석화, 법무부 장관 천정배, 만화가 허영만, 한승헌 변호사, 작가 김주영, 신용하 백범학술원 원장,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

이 시대의 말과 생각
황호택 기자가 만난 생각의 리더 10인
지은이 : 황호택
가격 : 11,000 원
출간일 : 2006년 01월 01일
쪽수 : 359 쪽
판형 : 신국판
분야 : 교양
ISBN : 8970904476
비고 :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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