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神의 땅에 神은 없었다

  • 입력 2006년 3월 2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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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삼소회(三笑會) 종교 순례 길에 함께 다녀왔다. 불교의 비구니 스님과 가톨릭과 성공회의 수녀, 그리고 원불교 교무 등 한국의 여성 수도자 16명이 마음을 모아 떠난 길이었다.

불교의 성지 인도에서 붓다를 찾아보았다. 만나서 여쭈어 볼 것도 있었다. 슬픔에 젖은 눈망울들을 보고 형형색색의 종교 현장을 헤매면서 붓다를 찾았다. 그러나 모진 차별의 멍에를 등짐처럼 짊어지고 먼지가 푸석이는 황톳길을 따라 물을 찾아 하염없이 걸어가는 비참한 여인의 뒷모습만 있을 뿐이었다.

그 옛날 붓다는 누더기 옷과 걸식으로 철저한 무소유를 실천하면서 ‘마음을 비워 욕심내지 말고, 서로 어우러져 차별하지 말라’는 성자의 길을 가르쳤다. 그러나 인도에는 아직도 ‘접촉하는 것조차도 더럽다’는 ‘불가촉천민’이 동물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인도에서 ‘천민촌’이 없어지는 날, 그때 붓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간직한 채 인도를 떠났다.

국경을 넘어 성자의 땅,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불교인으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곳 신(神)의 땅에서 나는 예수를 만나 뵙기를 간절히 바랐다. 올리브동산, 골고다언덕, 성묘교회, 주기도문교회, 나사렛마을을 돌면서 성자의 길을 남김없이 듣고 배웠다. 예수가 얼마나 거룩한 삶을 살고 모두를 구원하려고 자신을 내던졌는가를 생생하게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살아 숨쉬는 예수는 만나지 못했다. 아집과 편견에 젖은 사람들의 길만 널려 있을 뿐이었다.

성자의 길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 가지 장벽을 허물어 버려야 할 것이다. 자기의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좀 더 자신을 비우고 침묵하면서 다른 이의 마음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 골고다언덕에서 예수의 고난을 자신의 것처럼 가슴아파하고 성자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려고 눈물짓는 여성 수도자들의 눈망울 속에서 그나마 예수의 그림자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귀한 추억으로 남는다.

본 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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