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아름다워라,늙고 스러지는 것들이여…‘시간의 이빨’

  • 입력 2005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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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이빨/미다스 데커스 지음·오윤희 정재경 옮김/440쪽·2만 원·영림카디널

나이란 이제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무시되어 버린다. 예전에 지혜의 원천이던 노인들은 설 자리가 없다. 전기물에서조차 인생의 황혼기는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새것이라는 사실 또한 새로운 것이다! 19세기 이전만 해도 세상은 온통 중세의 낡은 것에 둘러싸여 있었다. 완전함이란 오히려 예외적인 상태이며, 오직 한순간에 걸쳐 있을 뿐이다.

1902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의 종각이 예기치 않게 무너졌을 때 건축 전문가들은 매우 의아해 했다. 1000년을 견딘 건물이 왜 갑자기 붕괴됐을까? 그러나 평범한 베네치아 시민은 그 정확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건물이 너무 늙었기 때문이죠….”

자연은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사코 몰락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오래된 건물을 그냥 두고 보지를 못한다.

그러나 많은 돈을 들여 ‘옛날의 위용’을 되찾고자 해도 복구(復舊) 과정에서 그 집의 오래된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만다. 쌓여 있어야 할 먼지와 쥐들이 오가는 구멍이 없어지고, 겹겹이 붙인 벽지 뒤에 숨어 있는 시간이 사라진다.

이 책은 쇠퇴의 미를 찬양하는 황홀한 보고서다. 네덜란드의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 그는 백과사전적인 생물학 지식에 쾌활한 유머를 버무려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해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온전한 성(城)보다는 폐허에서 더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것은 죽은 쥐가 하루도 안 돼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새로운 생명으로 변해 가는 것과 같다. 무덤이나 목초지와 마찬가지로 폐허도 하나의 균형 잡힌 생태계다.

그러나 어떤 환경운동가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연을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시간을 되돌리려고 힘든 싸움을 벌인다. 이미 뭍이 되어 버린 새들의 서식지를 파서 다시 늪을 만들고, 이 늪은 다시 호수가 된다.

그러나 진정한 산지기는 조용히 기다리는 법이다.

있는 그대로 놓아 두어라. 자연환경, 조각물, 숲, 에스키모, 작은 소녀…. 이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놔 두어라. 그들을 보호하려 하지 말고 시간에 순응해서 살아가도록 돌봐야 한다. 마지막 시간이 되면 벽 하나가 무너지고 또 다른 벽이 무너지듯 그들이 천천히 죽어 가도록 하라. 그리고 아름다운 사진을 남기는 것으로 만족하라.

우리는 생일날 한 살을 더 먹었다고 잔치를 연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지니고 있는 피부는 지난해에는 있지 않았던 것이다. 1년 새 그것은 10번도 넘게 바뀌었다. 핏속의 적혈구는 겨우 100일을 견딘다. 머리카락이나 손톱 발톱은 또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두개골과 몇몇 신경조직만이 우리와 같은 날에 생일을 쇤다.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단지 마지막 남은 부분들의 죽음일 뿐이다. 대부분의 것은 이미 오래전에 아무런 애도 절차도 없이 뱃전 밖으로 내던져졌다.

인간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 하는데,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저녁이 되어도 잠자리에 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죽지 않는 종족을 만나 본 ‘걸리버’는 이렇게 다짐하지 않던가. “어떠한 독재자도 내가 삶 속에서 얻는 기쁨을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막지 못하게 하리라!”

저자는 박식하면서도 재기발랄하고 심오하면서도 짓궂기까지 한 매혹적인 이야기 솜씨로 쇠락을 거부하면 삶 자체를 거부하게 된다고 독자들을 다독인다.

“쇠약해진다는 것은 얼마나 멀리 여행했는지 알려 주는 시계와 같다. 노년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노인들을 탓하지 마라. 삶의 활력을 소진시킨 것은 노인의 육체가 아니라 젊은이의 육체다.”

우리의 문화는 목표와 전략,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무조건 전진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삶이란 오르면 오를수록 더 좋아지는 사다리 같은 게 아니다.

성공? 성공이란 그저 거쳐 가는 길이며 달려가는 하나의 길일 뿐이다. 그 길은 또 어디로든 닿을 수 있다. 오직 차근차근 걸을 뿐이다.

“구조(構造)의 목적은 잠시 지연시키는 것./결국에 가서는 모든 무게는 무너지며,/긴장은 풀리게 될 터….” 원제 ‘DE VERGANKELIJKHEID’(1997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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