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68>춘향전-작가미상

  • 입력 2005년 6월 22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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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은 춘향과 이 도령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사랑을 다룬 하고많은 소설 중에 이 작품이 유독 인기를 끈 요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 춘향에게 있다. 이 도령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가 자기를 끝까지 사랑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헤어질 때는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 엄연한 현실에 한없이 절망하면서도 이 도령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또 변학도가 수청을 강요할 때는 기생도 인격을 가진 인간이며,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는 데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며 항거했다. 급기야 거지의 모습으로 옥사를 찾은 이 도령을 보고는 원망도 하지 않고 오히려 월매더러 잘 대접하도록 부탁하는 춘향의 모습은 독자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작품 속에서 남원의 민중이 전폭적으로 춘향을 지지하듯이 독자도 춘향의 고난에 함께 울고 행복한 결말에 함께 즐거워했던 것이다.

춘향은 사랑이란 상호 간의 한없는 헌신이자 믿음임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이 사랑을 위한 헌신과 믿음은 강고했던 중세적 통념과 제도도 막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춘향의 사랑은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착하고 능력 있는 여성이 온갖 악조건 속에 핍박과 고난을 겪다가 끝내 사랑을 이룬다는 이 통속한 이야기가 우리 민족의 고전이 된 까닭은 춘향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가 우리 역사의 방향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춘향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인격적으로 동등하며, 근원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체험하고 확인해 왔던 것이다.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근대 세계의 이념은 이미 ‘춘향전’ 속에서 싹트고 있었으며, 이 점에서 우리는 모두 춘향의 후예인 것이다.

원래 ‘춘향전’은 판소리 ‘춘향가’에서 나왔는데, 그 역사는 400여 년이나 된다. 그동안 ‘춘향전’은 최초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창조되어 왔다.

그래서 ‘춘향전’은 단일 작품이 아니라 거대한 군집(群集)으로 존재한다. 성춘향도 있고 김춘향도 있으며, 기생 춘향도 있고 여염 처녀 춘향도 있으며, 봉고파직되는 변학도도 있고 그냥 용서받는 변학도도 있다. 20세기 이후로는 창극 연극 오페라 영화 드라마 등으로 계속 재창작되고 있다.

이처럼 당대의 현실을 호흡하며 계속 업데이트되어 왔다는 점에서 ‘춘향전’은 우리 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존재이다. 그러므로 다른 고전 읽기와 달리 ‘춘향전’ 읽기는 우리의 선조들이 춘향과 함께 살아오며, 그녀를 재창조한 그 전통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춘향을 재창조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수많은 ‘춘향전’ 모두 가치 있지만 우선 세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열녀춘향수절가’(84장본)는 ‘춘향전’ 역사의 한 정점이라 할 수 있으며, ‘남원고사’는 내용이 가장 풍부하며 골계미가 뛰어나다. 이 두 작품은 모두 ‘춘향전’(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 들어 있다. 민중적 체취에 흠뻑 빠지고 싶으면 ‘옛 그림과 함께 읽는 이고본 춘향전’(열림원·2001)이 있다. 판소리 ‘춘향가’를 함께 음미하면 즐거움이 배가되는데, 김소희(서울음반)와 조상현(한국브리태니커)의 완창 음반이 정평이 나 있다.

김종철 서울대교수 국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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