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문화인류학적으로 본 ‘마파도’

  • 입력 2005년 4월 20일 18시 56분


코멘트
《안팎에서 “50만 명만 들어도 다행”이라고 걱정하던 영화 ‘마파도’가 300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다. 3월 10일 개봉한 이 영화는 17일까지 전국 280만 관객을 끌어들이는 이변을 만들었다. 이 소박한 영화가 성공한 원인은 뭘까? ‘다섯 엽기 할머니와 두 남자의 좌충우돌 스토리’로 이 영화를 봤다면 당신은 딱 절반만 본 것이다. 주부 관객이 유독 많이 찾는 ‘마파도’는 중년 여성들이 희구하는 이상적 삶의 형태, 그리고 인류학적 원형에 가까운 라이프스타일이 숨어 있다는 사실. 3개의 핵심 질문을 통해 ‘마파도’를 벗긴다.》

○ 왜 다섯 명인가?

다섯 명의 엽기 할머니는 왁자지껄한 ‘여고 동창회’의 축소판이다. △똑 부러진 회장댁(여운계) △침묵하다가 청천벽력 같은 한 마디를 내뱉는 여수댁(김을동) △욕쟁이 진안댁(김수미) △남자 밝히는 예쁜이 마산댁(김형자) △시종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젊은 할머니 제주댁(길해연)은 끊임없는 ‘수다’가 생성되기 위한 여고 동창회의 이상적이고 전형적 멤버인 셈. 이들은 각각 △똑똑한 체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리더형’(여운계) △가끔 충격적인 얘기로 좌중을 뒤흔드는 ‘충격형’(김을동) △남을 무조건 욕하는 ‘험담형’(김수미) △남자와 섹스 얘기로 분위기를 돋우는 ‘도발형’(김형자) △조용히 이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청취형’(길해연)인 것. 이들은 가장 안전하고 균형 잡힌 도형인 ‘5각형(펜타곤)’을 이룬다. 극중 출신별로도 ‘마파도’란 섬의 소재지인 전라도 2명(여수댁+진안댁), 충청도 1명(회장댁), 경상도 1명(마산댁), 제주도 1명(제주댁)으로 지역적 밸런스를 이룬다. (그래픽 참조)

○ 왜 여자끼리인가?

여자들은 보통 말한다. “일생에 남자가 하나면 많고 반이면 적다”고. 마파도에 모여 사는 할머니들이 ‘엽기적’이기보다는 친숙하게 느껴지는 건 이들이 중년 여성들의 꿈을 대신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나이 들어 집에만 들어앉아 귀찮고 성가신 남편에게서 벗어나 여자들끼리 오순도순 수다 떨며 지내고 싶은’ 중년 여성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것.

영화 속 다섯 할머니가 한 데 모여 살지 않고, 각자의 집에서 떨어져 살다가 농사나 지붕공사, 유희(고스톱 같은)처럼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만 모이는 ‘따로 또 같이’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이는 것도 ‘수평적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여성만이 이룰 수 있는 세계. 만약 마파도에 할아버지 다섯이 살았다면, 한 집에 뭉쳐 살았을 것이 틀림없다. ‘수직적 인간관계’를 중시해 둘만 모여도 형과 아우를 정해야 속이 시원한 남자들의 속성상, 할아버지들은 일어날 때부터 잠들 때까지 명령하고 명령받는 관계를 떠나선 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선 자급자족한다는 할머니들이 닭이나 돼지 같은 가금(家禽)류를 기르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없다. 이는 성격을 포악하게 만드는 동물성 단백질 섭취를 최대한 줄이고, 풋고추 상추 양배추 등 ‘웰빙’식단을 위주로 하면서 자연친화적으로 살아가는 ‘에코 페미니즘’을 살짝 내비치는 대목이기도 하다.○ 왜 대마초인가?

갈등하던 다섯 할머니와 두 남자(이문식, 이정진)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집단 음주가무와 함께 대마초를 나눠 피움으로써 비로소 하나가 된다(사진). 대마초 흡입은 현행법상 불법이지만, 이 순간은 문화인류학적으로 볼 때 ‘축제’의 원형을 상기시켜 준다. 멕시코의 한 인디언 부족은 집단의례 시 환각 성분이 있는 ‘페요태’라는 선인장을 건조시켜 나눠 먹는다. 집단 환각을 통해 신(神)을 동시에 체험하고 고단한 현실을 잊음으로써 부족의 결속을 다지는 것.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