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차병직]변협 ‘로스쿨 반대’ 명분 약하다

  • 입력 2005년 3월 8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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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자격을 운전면허에 비유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예상한 대로 격렬한 반론이 제기됐다. 권리를 좌우하는 전문가의 자격을 운전면허에 견주는 자체가 불쾌하다는 태도였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 자격도 남발해도 좋으냐고 힐난했다. 반론은 좋았지만, 그 근거는 실망스러웠다. 의사나 변호사 자격을 아무에게나 주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엄격한 과정을 거쳐 미리 정한 일정 기준에 도달하는 사람에게는 수에 구애받지 말고 자격을 주자는 것일 뿐이다. 운전면허는 또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가. 미숙한 사람에게 면허증을 발급했다간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고 말 것이다. 본질적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운전면허와 변호사 자격을 비유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정당하다. 만약 그것이 가당찮은 비유라면, 우리 사회의 변호사 제도나 운전면허 제도 중 하나는 분명 비정상적이다.

▼數 늘린다고 質 떨어지나▼

변호사 배출을 운전면허 주듯이 하는 데 대한 일반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 줄 수 있는 제도가 바로 로스쿨이다. 미국의 로스쿨을 말하는 건 아니다. 실질적이고 충분한 법률 교육을 할 수 있는 기관을 편의상 로스쿨이라고 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고시학원 구실조차 제대로 못하는 보통 법과대의 파행적 현실에 대한 반성의 결과다. 그런데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로스쿨 도입에 강력 대응하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단다. 그 소식이 다시 운전면허증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변협이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는 변호사 수에 있다. 지난달 신임 변협 회장이 취임과 함께 한 말만 보더라도 그렇다.

“변호사 대량 생산이라는 은폐된 목적을 위해 엉뚱하게 미국식 로스쿨을 이용하고 있다.”

이 취임사의 일구는 변호사 수가 계속 늘어나는 데 반대하는 변협의 솔직한 태도를 드러낸다. 하지만 로스쿨 도입 찬반이 변호사 수 증가의 찬반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변협이 로스쿨 도입에 부정적인 것은 숫자 때문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로스쿨 도입을 추진하는 쪽은 변호사 수를 늘리는 게 주목적이 아니다. 사법 개혁의 완성이 목표다. 법학교육 제도의 개혁은 사법 개혁의 첫걸음으로 시험 제도, 사법연수원 폐지를 전제로 한 법조인 양성, 법조 일원화 등의 문제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수준에 맞는 교육만 담보할 수 있다면 자격을 부여할 사람 수를 함부로 제한할 근거는 없다. 따라서 부수적으로 변호사 수가 늘어나는 데 개의치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변협이 변호사 수 증가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질의 저하를 들먹이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법률가의 질을 보장하겠다는 것이 로스쿨 아니겠는가. 정작 의도는 수의 제한으로 안정된 수입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변협 회장이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있던 작년 이맘때 내놓은 ‘적정 변호사 수에 관한 연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매년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500명으로 하는 게 적절하며, 호황을 고려해도 700명을 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변호사 1인당 월 500만 원의 수입을 보장하기 위한 최저선이란다. 1인당 매월 6건의 사건을 맡아 건당 수임료로 250만 원씩 받을 경우라고 했다. 사회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거의 절망적인 계산법이다.

▼반대의도는 안정적 수입 확보▼

단체장으로서 자기 직역의 이익을 옹호하려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로스쿨 도입에 예상되는 문제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반대의 논거를 특정 직업의 진입 장벽을 높여 상당한 소득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발상에 두는 것이 허용되겠는가. 차라리 이상적인 로스쿨이 운용되더라도, 그에 소요되는 비용과 고급 인력의 낭비 가능성을 근거로 드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변호사 자격은 개인 능력의 한 부분에 대한 인증에 불과하지 결코 특정 신분의 증명이 아니다. 그걸 깨달으면 변호사의 일자리도 몇 배 늘어난다.

차병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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